▲ 민찬 대전대 교수 |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미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할 진댄 백성이 사랑을 알리라. 대중을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 이를 먹여 다스려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할진댄 나라가 보전될 줄을 알리라.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을 유지하게 될 것이니라.' 임금이 임금답게 하고 신하가 신하답게 하고 백성이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의 태평이 지속된다는 내용의 이 노래는 '논어'의 '안연편'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연상한다고 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난 주말에 1박 2일의 일정으로 강화도를 다녀왔다. 연평도 포격 사태가 있은 직후라서 일정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오래 전부터 벼르고 또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계획했던 일이라서 가는 걸로 했고 또 아무 일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일요일 오전에 연평도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떨어지던 바로 그 시각에 우리 일행은 석모도를 둘러보고 난 다음 강화도로 건너오는 배를 기다리기 위해 선착장에 모여 있었다. 주말이면 찾아오는 사람들 발길에 늘 붐비는 곳이었을 텐데도 그 날은 주민들 이외에 우리 같은 행락객 차림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각에 이렇게 나다녀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하면서도 문득 떠오른 것이 '안민가'였다. '안민가'에 들어 있는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하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또 한 구절, 거기에 이어지는 '할진댄 나라가 보전될 줄을 알리라'였다. 그리고 그 두 구절은 이렇게 해석이 되고 있었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서 살 수가 있겠는가 하고 백성들이 스스로 말을 하게 된다면 나라가 보전될 수 있는 것이니라.' 또 이렇게 해석이 되고 있었다. '백성들의 입에서 이 땅을 버리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면 그것이 나라를 보전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시인의 눈이 범상하지 않은 또 다른 사례가 있어 함께 소개해보기로 한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일어서서 애국가를 경청하던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삼천리 화려강산' 하는 대목에서 비상하는 한 무리의 새들이 화면에 잡혔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새들의 힘찬 날갯짓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새들이 자기들의 세상을 떼어 매고 이 땅을 떠나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작품이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였다. 황지우 시인이 그 시를 발표한 1980년대 후반은 세상을 뜨고 싶을 만큼 엄혹한 시절이었다. 오래 전이지만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1박 2일 강화도 순례의 마지막 경유지는 제적봉 통일전망대였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3가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었다. 전망대에 설치한 망원경을 돌려 양안의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두어 사람이 보일 뿐 모든 것이 조용했다. 때마침 수면 위로는 낮게 한 무리의 철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신라 경덕왕 시절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며칠 연평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리고,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언론에서는 연일 '피란'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꼭 피란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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