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찬]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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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시론]민찬 대전대 교수

  • 승인 2010-12-01 15:10
  • 신문게재 2010-12-02 21면
  • 민찬 대전대 교수민찬 대전대 교수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이다. 왕이 하루는 신하들을 불러 훌륭한 스님을 모셔 오도록 했다. 마침 위의를 갖춘 한 스님이 보이기에 신하들이 그를 데려와 알현시켰는데, 왕은 내가 말한 훌륭한 스님이 아니라면서 물리쳤다. 그때 누비옷을 걸치고 나무통을 짊어진 스님이 걸어가고 있었다. 왕이 그를 불러 누구냐고 물으니 충담이라고 대답을 했다. “어디서 오는가?”하고 왕이 재차 묻자 그는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님에게 차를 달여 올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라고 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 민찬 대전대 교수
▲ 민찬 대전대 교수
충담은 '충담사'로 고교 시절에 배운 저 유명한 향가 '찬기파랑가'를 지은 인물이다. 일찍이 향가를 해독한 양주동 박사가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듯이 이 작품은 드높은 절조와 빼어난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 신라시대 노래다. 경덕왕도 당대에 그 소문을 알고 있었는지 충담에게 이러한 부탁을 했다. “나를 위하여 이번에는 백성들을 편히 살게 하는 노래를 지어주시오.” 그렇게 해서 충담이 지어 바친 노래가 '안민가'다. 말 그대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이 노래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미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할 진댄 백성이 사랑을 알리라. 대중을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 이를 먹여 다스려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할진댄 나라가 보전될 줄을 알리라.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을 유지하게 될 것이니라.' 임금이 임금답게 하고 신하가 신하답게 하고 백성이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의 태평이 지속된다는 내용의 이 노래는 '논어'의 '안연편'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연상한다고 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난 주말에 1박 2일의 일정으로 강화도를 다녀왔다. 연평도 포격 사태가 있은 직후라서 일정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오래 전부터 벼르고 또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계획했던 일이라서 가는 걸로 했고 또 아무 일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일요일 오전에 연평도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떨어지던 바로 그 시각에 우리 일행은 석모도를 둘러보고 난 다음 강화도로 건너오는 배를 기다리기 위해 선착장에 모여 있었다. 주말이면 찾아오는 사람들 발길에 늘 붐비는 곳이었을 텐데도 그 날은 주민들 이외에 우리 같은 행락객 차림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각에 이렇게 나다녀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하면서도 문득 떠오른 것이 '안민가'였다. '안민가'에 들어 있는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하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또 한 구절, 거기에 이어지는 '할진댄 나라가 보전될 줄을 알리라'였다. 그리고 그 두 구절은 이렇게 해석이 되고 있었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서 살 수가 있겠는가 하고 백성들이 스스로 말을 하게 된다면 나라가 보전될 수 있는 것이니라.' 또 이렇게 해석이 되고 있었다. '백성들의 입에서 이 땅을 버리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면 그것이 나라를 보전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시인의 눈이 범상하지 않은 또 다른 사례가 있어 함께 소개해보기로 한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일어서서 애국가를 경청하던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삼천리 화려강산' 하는 대목에서 비상하는 한 무리의 새들이 화면에 잡혔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새들의 힘찬 날갯짓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새들이 자기들의 세상을 떼어 매고 이 땅을 떠나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작품이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였다. 황지우 시인이 그 시를 발표한 1980년대 후반은 세상을 뜨고 싶을 만큼 엄혹한 시절이었다. 오래 전이지만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1박 2일 강화도 순례의 마지막 경유지는 제적봉 통일전망대였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3가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었다. 전망대에 설치한 망원경을 돌려 양안의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두어 사람이 보일 뿐 모든 것이 조용했다. 때마침 수면 위로는 낮게 한 무리의 철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신라 경덕왕 시절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며칠 연평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리고,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언론에서는 연일 '피란'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꼭 피란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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