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영 SK 텔레콤 중부마케팅본부장 |
B그룹은 매주 작성해야 하는 압박 때문에 불만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훨씬 높은 점수를 얻은 반면 A그룹은 개학일에 닥쳐 밀린 독후감을 쓰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점수는 낮고 불만도 높았다고 한다. 단순한 흥미를 넘어 두 사례는 마케팅의 진화방향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과연 소비자의 구매의사 결정 및 소비행태는 합리적인가?' '선택의 자유가 최적의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가?'
기존의 경제학에서는 소비자 선택의 이론을 효용최대화로 설명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의 특성상 구매의사 결정은 지극히 합리적일 수밖에 없으며 완전한 자율과 선택이 주어지면 최적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를 촉발한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비합리적인 판단과 탐욕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힘을 얻어 새로운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행동경제학이나 뉴로마케팅은 기존의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소비자의 구매 혹은 소비 행태는 감정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포춘지(誌)가 향후 미래를 이끌 10가지 신기술 중 하나로 선정한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은 뇌 과학과 마케팅을 결합한 신종 학문으로,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한스 게오르그 호이젤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상품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의 영역이며, 의식은 구매 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후 그 것을 합리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처음 사례에서 4000원짜리가 더 맛있을 것이라는 상식 수준의 판단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특정 영역에서 시음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그 판단에 따른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맛이 더 있다, 향이 좋다 등의 논리개발 과정이 이어진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테스트 참여자들은 커피 맛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뇌에서 야기된 착심(錯心) 현상에 의해 실제로 맛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를 활용한 호이젤 박사의 실험에 따르면 새로운 상품을 봤을 때 소비자의 뇌는 학습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되지만, 친근한 브랜드를 봤을 때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뇌의 깊숙한 부분에 있는 편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어떻게 지속적인 구매로 이루어지는 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다.
두번째의 경우 '넛지'(Nudge,팔꿈치로 옆구리를 슬쩍 찌르기)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리차드 탈러 교수의 완전한 자율보다는 미세한 자극과 유도를 통해 훨씬 더 지혜로운 선택이 가능할 것이라는 행동경제학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B그룹의 경우 제한적인 자율, 즉 적절한 개입을 통해 비합리적인 결정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요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뇌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과부하를 줄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한다.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나 직관, 예감 등의 방법으로 복잡한 분석과 판단의 과정을 줄이거나, 고정관념에 따라 휘둘려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 그러한 메커니즘의 결과라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품질차별화와 원가경쟁력 등의 전통적인 경쟁우위 전략을 통해 시장에서의 성과를 높이는 노력과 병행해서 뉴로마케팅이나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시장 접근 방식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의 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의사결정의 중추에 확고하게 러브마크 기업 혹은 상품으로 기억되어 지속적으로 기분 좋은 편애(?)를 받는 것만큼 확실한 마케팅의 성과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