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정 보령 광명초병설유치원 교사 |
'누가 나를 여기로 보냈을까?', '신규교사 10명 중 왜 하필 나일까?'로 시작된 질문은 '그곳에 목욕탕은 있을까? 세탁소는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며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힘들게 공부한 시절에 비하면 섬에 가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이틀을 울고 이곳으로 왔다. 나를 보낼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마... 일본으로 유학 갔다고 생각할란다” 지금 생각해보니 더 가슴 아픈 말인 것 같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오게된 첫 나의 직장! 광명초등학교병설유치원. 이곳에서의 생활은 아주 꿀맛이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매일 꿈꾸던, 권위가 있으되 교사의 참신한 의견을 존중하는 멋진 교장·교감 선생님, 퇴근 후 얼큰한 국물에 술 한 잔하며 힘든 투정 다 받아주고 가르쳐 주시는 선배 선생님들. 앙~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나의 제자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특히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우리 아이들은 나의 큰 에너지가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엄마를 찾으며 울기만 하던 5살 애들은 이젠 유치원에 먼저 오려고 하고 자기물건을 척척 정리하고, 활동을 시작한다. 그 중 제일 걱정거리였던 우리 김정우(가명).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을 하고, 묻는 말에 다른 말을 하기 일쑤였다. 행동을 제어하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보다는 짜증을 내거나 자지러지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사진을 찍으면 항상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정우… 그 동안 내가 정우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은 “김정우, 선생님 보세요. 선생님 눈 쳐다보고 얘기하세요” 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우는 나의 눈을 쳐다보며 눈을 찡긋찡긋하면서도 울음을 참고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이야기 했다. 학기 초 “저는 못해요.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항상 “넌 할 수 있어!”를 자주 이야기 해주고 “잘했어!”, “파이팅!”을 습관화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닮는다고 했던가? 처음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던 아이들이, 이제는 음악만 나오면 다들 일어나서 춤을 추며, 주말 지낸 이야기를 몸으로만 표현하는 시간에는 손짓, 발짓, 표정까지 사용하며 연기를 한다. 우리 유치원은 늘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위기가 되었다.
물론 내가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 한명의 가족, 친척,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가끔 외롭기도 하다. 외진 섬에 홀로 떨어진 동생을 만나러 온 언니를 기상악화로 배가 뜨지 않아 못 만났던 적도 있다. 또, 여름의 태풍 '곤파스'를 겪으며 잠 한숨 자지 못하며 바람에 휘어진 베란다 샷시문을 잡고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늘 엔돌핀이 되어주는 유치원 친구들이 있다. 아프다고 하면 와서 안마 해주고, 매일 사랑의 편지를 써주고, “선생님이 최고예요” 라고 말해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제자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지금도 꿈만 같고 가슴이 뭉클할 만큼 감동적인 나는 정말! 행복한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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