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연주와 성아, 모녀가 단둘이 사는 집에 한 남자가 세 들어온다. 강 선생이라고 불리는 이 남자는 실은 골동품 사기꾼 창인이다. 자신이 찾던 백자가 이 집에 있다는 걸 알고 조용히 그걸 훔쳐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는 호시탐탐 백자를 노리지만 일이 자꾸 꼬인다.
여기에 웃음의 맥을 정확히 찌르는 대사가 맞물리고 켜켜이 쌓이면서 웃음의 크기를 키운다. 치밀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공이 컸다. 한석규는 대중이 사랑했던 모습으로, ‘엣지 있는 여자’ 김혜수는 맹하고 귀엽고 낯선 모습으로 웃음의 중심에 선다.
“당신 제비니? 어쩐지 말발이 예술이더라. 나 이 집 대출금도 다 못 갚았어. 나 빈털터리야”라며 독설을 퍼붓는 연주(김혜수). 그녀에게 “연주씨가 바로 사파이어고 에메랄드고 크리스탈이에요. 으이그, 이 사랑스런 비관론자 같으니라고”라고 눙치고 볼을 꼬집는 창인(한석규)은 어디서 본 듯하다. 딱 ‘서울의 달’의 홍식이다.
언제나 ‘보이스 비 앰비셔스!’를 외치던 홍식은 번듯해 보이는 제비인 동시에 꽃뱀에게 걸려 속옷만 입은 채 거리를 뛰어야 했던 애처로운 남자였다. 1994년 방영돼 장안의 화제가 된 이 드라마에서 한석규는 비열하고 얍삽한 홍식을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홍식은 죽었지만 만약 살아 있다면 지금쯤 창인의 모습이지 않을까. 한석규는 중년층에겐 과거를 추억하게 하면서, ‘서울의 달’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겐 자신의 존재감를 각인시킨다.
반면 김혜수는 낯설다. 그가 연기하는 집주인 연주는 자기가 맹한 줄도 모를 만큼 맹한 여자다. 주도면밀한 ‘스타일’의 박 기자와는 완벽히 대각선상이다. 세상 사람들을 다 잡아 먹을 듯 독설을 날리는 히스테릭한 여성이면서 창인에게는 겁먹은 듯, 또 유혹적인 표정으로 다가가는 여자. 김혜수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연주를 딱 맞는 옷을 입은 양 연기한다.
둘의 확실한 캐릭터 연기 덕에 ‘이층의 악당’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이층 사기꾼과 신경쇠약 어머니’로 옷을 갈아 입었다. 보물찾기와 남녀 사이의 밀고 당기기, 그리고 웃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궁금해지는 사람은 손재곤 감독이다. 그가 정성껏 매만진 캐릭터 덕에 배우들은 맘껏 놀 수 있었다. 그는 2006년 로맨스와 코미디, 스릴러가 뒤섞인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층의 악당’도 로맨스에 코미디를 섞고, 서스펜스에 액션을 곁들였다. 역시 대사는 재기 발랄하고 웃음의 맥을 꼭꼭 짚는 감각은 그대로 살아있다.
올해 상영된 코미디 가운데 단연 발군이다. 이만큼 숙성된 코미디를 얻었다는 건 한국 영화계의 성과다. 하지만 어쩌면 좋을까. 깔깔 웃고 극장을 나서면 뭘 봤는지 스토리는 바로 생각나지 않고 창인과 연주만 또렷이 떠오르는 걸. 그런데 궁금하다. 20억 원짜리라는 ‘청화용문다기’는 진짜 있기는 한 건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