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 |
이를 놓고 매스컴에선 '서방과 중국 간의 노벨평화상 전쟁'이라고까지 평하고 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러시아, 카자흐스탄, 쿠바, 모로코, 이라크 등이 불참을 통고했ㅇ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통 서방국가들은 중국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노벨상위원회가 오슬로에 대사관을 둔 36개국에 초청장을 보내자 중국은 즉각 각국 대사관에 시상식 불참을 요구하며 류사오보를 지지하는 나라는 이에 상응한 조치가 따를 것이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중국은 반체제 인사에게 노벨상을 주는 행위자체가 서방세계의 악의에 찬 도발행위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이 서방세계와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계속 강공책으로 나온다 해서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되레 흠집을 더해가는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 세계의 여론은 이렇다. '솔제니친'이 문학상을 탈 때의 소련과 아웅산 수지의 평화상 수상때의 미얀마 정부보다 중국이 더 가혹하다는 여론에 휩싸여 있다.
작은 상에도 잡음은 따르기 마련인데 항차 세계가 눈독을 들이는 노벨상에 어찌 뒷말이 없겠는가. 짚이는 대로 그 사례를 들어보자. 노벨상이 구미(歐美) 일변도로 주어져 온 게 아니냐는 필자의 물음에 안토니오즈 프랑스 문화성 문예창작국장은 이런 말을 했다.
한림원(서구)에 알려지지 않으면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쯤 이야기가 되다 보면 어필과 로비의 한계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게 한다. 동양적인 것이 반드시 세계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든다면 서예나 사군자는 예술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필자가 유럽취재에 나섰을 때의 이야기다.
노벨상을 조건부 수상한 인물은 테레사수녀였다. 그녀는 상은 받되 요란하게 파티를 열거나 사치스런 시상식 같은 건 고사하겠다고 나왔다. 인도의 남단 캘커타로 그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할 때 테레사 수녀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이밖에도 노벨상(문학)을 거부한 인물도 있었다. '벽'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실존주의의 선구 사르트르의 경우가 그러했다. '상이란 일종의 부채'라며 수상 전 작가와 수상 후 작가는 그 위상이 달라진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한 사르트르였다.
그러나 속내는 딴 데 있었다는 후문이다. 후배인 카뮈가 먼저 상을 탄데 대한 반감 때문이라 보는 눈이 있다. 그런가 하면 수상자를 깎아 내리는 경우도 우리는 흔히 보아왔다. '설국'의 작가 일본의 가와바타(川端康成)가 수상을 하자 일본 매스컴에선 태합수길(秀吉)의 작가 이노우에(井上靖)나 행동과 죽음의 미학, '우국'으로 유명한 '미지마(三島由紀夫)'가 먼저 탔어야 했다고 떠들어댔다.
한국에선 DJ가 유일하게 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문학 분야에서 고은(高銀)이 여러차례 한림원을 노크했지만 올해도 소식이 없다. DJ가 평화상을 받았을 때 가시 돋친 말을 한 인사가 있었다. '노벨상도 이젠 타락했구먼!'이라고…. 이에 대해 식자층에선 정치지도자로서 도량이 그 정도냐고 꼬집기도 했다.
'축 수상'하고 5만원짜리 화분하나 못 보내는 도량이냐고 혀를 찼던 것이다. 노벨평화상을 놓고 중국과 서방세계가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 이념대결로 비쳐지기도 한다. '대륙의 공룡' 중국이 으르렁대자 중·후진국들은 중국의 눈치 살피기에 바쁜 듯하다. 우리 정부도 중국을 곁눈질 하는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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