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향기에 취해 있노라면, 학창시절에 배운 '국화 옆에서'라는 시구가 절로 떠오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피우기 위하여서
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렇다!
저기 피어 있는 들국화 한 송이도 늦가을 어느 날 아무 흔적도 없다가 갑자기 피어난 것이 아니다. 겨울의 거두어 가는 끝자락에, 아직도 시린 이른 봄의 꽃샘추위에 그 여린 새순을 대지 위로 내민 후, 한 여름 몸을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햇볕, 뿌리째 삼켜버릴 듯한 폭풍우, 줄기까지 갉아먹으려는 온갖 버러지들의 극성스러움, 갖은 수난을 다 버텨내고 지금, 저렇게 함초롬히 피어있는 거다.
인고(忍苦)의 과정이 있었기에 저리도 가슴에 스미는 아름다운 향기와 고아한 자태를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교내 체육대회 때 달리기 종목에서 학급대표로 나온 선수들의 달리는 모습은 보는 이를 감동케 한다. 이름 있는 국제대회도 아니고, 또 선수 개인의 인생문제가 달린 대회도 아닌, 행사가 끝나고 나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아주 작은 축제일뿐인데도, 선수들은 출발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역주한다.
올림픽 100m 달리기 경주가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명예나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급의 영예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혹시 운동장에 유리조각이나 쇠붙이에 발을 찔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자갈에 채어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여 땅바닥을 살피면서 달리는 선수는 그 순간만큼은 한 명도 없다. 오로지 저 앞에 보이는 결승점을 향해 전력투구할 뿐이다. 그래서 지켜보는 관중들은 꼴찌에게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우승만이 가치 있고 꼴찌는 돌아볼 가치도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여러 불리한 조건들을 극복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소담스런 열매는 마른 나뭇가지에 어느 날 갑자기 주렁주렁 열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별로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작은 열매가 맺힌 뒤 잎이 돋아나고 그 잎이 부지런히 영양분을 공급해 늦가을에 탐스런 열매를 있게 하는 오랜 과정이 숨어 있음을 사람들은 잊고 사는 것 같다.
성숙한 사회는 결과보다도 과정을 더 중시하는 사회다.
이제 우리 사회도 과정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학교교육과정에 수행과정을 평가에 반영하고, 대학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는 것도 결과만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과정도 무시할 수 없는 평가 영역임을 분명히 전하는 메시지다.
이루어낸 결과가 신통치 않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그것은 귀와 눈만을 즐겁게 하는 평면적 예술이 아니라, 지켜보는 모든 이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일으키는 생명력이 있는 입체적 예술이다.
결과에만 연연하지 않고 현재 하고 있는 옳은 일에 몰입해 자신을 불태우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면서, 그들이 진정 성공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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