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대전역 뒤편 소제동에는 우리가 잘 아는 조선시대 기호학파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살았던 집(송자고택,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9호, 1653~1661년까지 거주)이 현존하고 있는데, 옛날부터 이 집 앞에는 크고 아름다운 '소제호(蘇堤湖)'가 있었으며 우암은 이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집과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또한, 이곳과 가까운 가양동, 중리동, 송촌동 등지에도 남간정사, 쌍청당, 동춘당, 옥류각 등 많은 전통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전통마을 옆에 경부선 철로를 놓고 대전역을 지으면서 소제동 뒤편 언덕, 현재 우송중·고등학교가 위치한 곳에 1907년 '대전신궁(大田神宮)'을 짓고, 1927년에는 이 마을과 오랫동안 함께해왔던 소제호를 메워버리고 대신 인공하천인 대동천을 건설했으며, 송자고택 앞에는 도로를 만들어 전통마을의 모습을 완전히 훼손시켜버렸다.
결국, 일제는 이 지역 조선인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말살하고 그 맥을 끊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일제는 대전의 '역사와 전통'을 완전히 제거함과 동시에 대전역 남북 축과 대전역과 충남도청을 잇는 동서축에는 식민도시를 형성하기 위한 신시가지를 만들고 일본인들을 위해 관공서, 금융시설, 상업시설, 주거지 등을 건축해 나갔던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조선 식산은행 대전지점(산업은행 대전지점), 충남도청사, 충남관사촌, 철도관사촌, 철도터널, 뾰족집 등은 그 증거물들이다.
그러나 대전의 아픈 기억들을 담고 있는 이 건축물들은 얼마 전 훼손된 '뾰족집'처럼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근대도시 대전'의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켜'를 연결해주지 못한 채 대전은 역사의 미아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대전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까운 부산과 목포, 대구를 보라. 부산과 목포는 각각 2003년과 2006년도에 동양척식회사 건물을 '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대구도 산업은행 대구지점 건물을 역사교육의 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근대역사관'으로의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뉴욕도, 런던도 낡은 공장 같은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같은 도시공간의 멋진 문화콘텐츠로 재탄생시켜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대전은 더 이상 나그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산증인이자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근대건축물들을 활용해 대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지나온 역사의 길을 가꾸고 채워나갈 때 '식민도시 대전'의 아픈 기억은 치유되고, 전통과 역사가 함께하는 미래도시 대전의 삶은 더욱 더 풍요로워 질 것이다. /이희준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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