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일자가 내일로 다가왔는데, 그 감옥의 총 책임자인 사령관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네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음모의 배후 인물을 적어서 투표함에 넣는다면 그들 모두를 사면할 것이며, 모두가 거부한다면 예정대로 사형 당한다는 것이다. 투표용지는 무기명이기 때문에 누가 배신했는지 알 수 없으니 자신의 양심만 속이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동료들의 목숨도 모두 살릴 수 있다는 그럴듯한 제안이었다.
사형에 대비해 일반 감방에서 위안실로 옮겼는데, 거기에는 '치릴로'라고 하는 또 다른 사형수가 먼저 와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는 수도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이상한 맹신적 신앙심으로 잔혹한 강도짓을 저질렀던 악명 높은 늙은 산적이다. 네 사람도 그의 악명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치릴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생의 마지막 밤과 맞바꿀 만한 추억담을 차례로 나누어보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하룻밤 동안 '데카메론'에서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행복하고 기억할 만한 순간, 혹은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 이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차례대로 회고해나간다. 치릴로의 교묘한 유도 질문에 나이가 가장 어린 나르시스란 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배후 음모자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이제 동이 트고 운명의 아침이 밝았다. 이들은 조용히 투표함에 자신의 용지를 넣었다. 아무도 배후자의 이름을 써넣지 않았다. 투표가 끝나자 치릴로 수도사는 '하룻밤의 데카메론'이라는 자신의 기발한 착상에 흡족해하며 네 사람의 태도를 격렬히 비난한다. '그날 밤의 거짓말'에서 배후 음모자를 밝혀냈다고 의기양양해 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수도사 치릴로는 사실 감옥의 총 책임자인 사령관이었다. 진짜 산적 치릴로는 이미 그 전날 처형되었다.
결국 사형수들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사령관은 국왕에게 배후 조종자가 국왕의 측근이자 후계자인 시라쿠사 백작임을 밀고해 공을 세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왕국에 내분이 일어나 왕조가 무너지고 후계자도 없이 왕국이 망해가는 것을 보면서 그때서야 사령관은 자신이 네 명의 사형수들의 교묘한 음모에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결국 사령관은 자신의 탐욕과 헛된 충성심에서 죄수들을 기만했다고 기고만장했던 것이 사실은 스스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갔다는 것을 깨닫고는 분통해 하며 자살을 한다.
이 책은 우리의 삶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네 명의 죄수가 모진 고문을 견디면서, 또 죽음을 기꺼이 맞이할 정도로 지키고자 했던 '불멸의 신'이라는 존재는 사실상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사령관이 밝혀내려고 했던 배후조종자의 실체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권력에 맹종하고 체제 수호를 위해 저지르는 자기기만적 행동의 결과가 자기 삶의 가치를 얼마나 좀먹는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