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를 무너뜨린 사형수 넷의 '새빨간 거짓말'

왕조를 무너뜨린 사형수 넷의 '새빨간 거짓말'

권력에 맹종·체제수호를 위한 악행의 참혹한 결말 깨닫게 해 강신철 한남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백북스 공동운영위원장

  • 승인 2010-11-23 14:17
  • 신문게재 2010-11-24 12면
  • 강신철 한남대 경영정보학과 교수강신철 한남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이 책의 저자 제수알도 부팔리노는 1920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인 코미소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입대해 싸우던 중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가까스로 탈출했으나, 은신처에서 결핵에 걸려 요양소 생활을 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부팔리노는 25년 동안 사범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여러 희곡 작품들과 오페라를 번역했다. 부팔리노는 환갑이 넘어서야 첫 번째 소설을 발표한 대기만성형 작가이다. 68세의 늦은 나이에 이 책「그날 밤의 거짓말」을 출간하여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시칠리아 왕국의 외딴 섬 요새 감옥에서 사형수 네 명이 사형되기 전 마지막 하룻밤을 함께 보내면서 나눈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출신 성분, 나이, 직업이 각기 다른 이들 네 명은 국왕 암살 혐의라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탈출이 불가능한 외딴 섬에 투옥되어 참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형일자가 내일로 다가왔는데, 그 감옥의 총 책임자인 사령관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네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음모의 배후 인물을 적어서 투표함에 넣는다면 그들 모두를 사면할 것이며, 모두가 거부한다면 예정대로 사형 당한다는 것이다. 투표용지는 무기명이기 때문에 누가 배신했는지 알 수 없으니 자신의 양심만 속이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동료들의 목숨도 모두 살릴 수 있다는 그럴듯한 제안이었다.

사형에 대비해 일반 감방에서 위안실로 옮겼는데, 거기에는 '치릴로'라고 하는 또 다른 사형수가 먼저 와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는 수도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이상한 맹신적 신앙심으로 잔혹한 강도짓을 저질렀던 악명 높은 늙은 산적이다. 네 사람도 그의 악명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치릴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생의 마지막 밤과 맞바꿀 만한 추억담을 차례로 나누어보자고 제안한다. 이들은 하룻밤 동안 '데카메론'에서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행복하고 기억할 만한 순간, 혹은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 이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차례대로 회고해나간다. 치릴로의 교묘한 유도 질문에 나이가 가장 어린 나르시스란 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배후 음모자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이제 동이 트고 운명의 아침이 밝았다. 이들은 조용히 투표함에 자신의 용지를 넣었다. 아무도 배후자의 이름을 써넣지 않았다. 투표가 끝나자 치릴로 수도사는 '하룻밤의 데카메론'이라는 자신의 기발한 착상에 흡족해하며 네 사람의 태도를 격렬히 비난한다. '그날 밤의 거짓말'에서 배후 음모자를 밝혀냈다고 의기양양해 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수도사 치릴로는 사실 감옥의 총 책임자인 사령관이었다. 진짜 산적 치릴로는 이미 그 전날 처형되었다.

결국 사형수들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사령관은 국왕에게 배후 조종자가 국왕의 측근이자 후계자인 시라쿠사 백작임을 밀고해 공을 세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왕국에 내분이 일어나 왕조가 무너지고 후계자도 없이 왕국이 망해가는 것을 보면서 그때서야 사령관은 자신이 네 명의 사형수들의 교묘한 음모에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결국 사령관은 자신의 탐욕과 헛된 충성심에서 죄수들을 기만했다고 기고만장했던 것이 사실은 스스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갔다는 것을 깨닫고는 분통해 하며 자살을 한다.

이 책은 우리의 삶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네 명의 죄수가 모진 고문을 견디면서, 또 죽음을 기꺼이 맞이할 정도로 지키고자 했던 '불멸의 신'이라는 존재는 사실상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사령관이 밝혀내려고 했던 배후조종자의 실체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권력에 맹종하고 체제 수호를 위해 저지르는 자기기만적 행동의 결과가 자기 삶의 가치를 얼마나 좀먹는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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