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선임부장 |
인용지수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분야에서 발행되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의 인용 횟수를 반영하는 지표다. 예로부터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듯이, 어느 식당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 장사가 잘되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본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으로 트위터, 페이스북을 하는 세상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정보의 인용, 재생산이 훨씬 빨리 이루어진다. 실험을 통해서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기술의 속성상 그 속도는 다르지만 인용의 개념은 같다. 즉, 질 좋은 정보(우수한 연구성과)는 높은 인용지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여러 종류의 인용지수가 나와 있지만 자연과학계에서는 ISI(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의 설립자인 유진 가필드가 창안하고, 현재는 미국 톰슨 로이터(Thompson Reuters)사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임팩트 팩터(IF;Impact Factor)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매년 7000여 종의 학술지에 대한 IF값이 계산돼 JCR(Journal Citation Report)에 발표된다. 연구자들은 이를 보고 IF 값이 높은 학술지에 자신의 연구결과를 싣기 위해, 조금이라도 성능이 좋은 물질을 만들고 분석하느라 밤을 새우곤 한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IF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일부 출판업자들은 과학 지식을 전파한다는 숭고한 목적에서 벗어나 학술지 판매부수를 늘려 이익을 많이 내고자 IF 값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편법을 자행하기도 한다.
과연 IF 값은 특정 연구결과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실제로 IF는 계산방법의 타당성,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정 논문이 아닌 학술지 전체의 IF 값으로, 여기에 게재된 모든 논문을 동일한 가치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유럽 과학편집자협회에서는 IF가 개별 논문이나 연구자가 아닌 학술지 가치를 정량화하고, 비교하는 것만으로 한정해 매우 조심스럽게 활용돼야 한다는 공식 의견을 채택하였다.
또한 독일과학재단은 연구비 분배, 보고서 평가, 교수 임용 등에서 과다한 연구실적 제출을 지양하고, 다섯 편의 주요 논문만 제출하게 함으로써 연구의 질을 집중해서 살필 수 있게 하는 규정을 올 7월부터 발효했다. 독일과학재단의 이사장인 마티아스 클라이너는 H-index나 IF 같은 수치적인 지표가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논문이 어느 학술지에 실리는가'에만 관심을 갖게 하고, 정작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놓치게 하는 우를 범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국립과학재단(NSF), 국립보건원(NIH) 등에서도 비슷한 지침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손쉽게 활용된다는 측면에서 IF 혹은 또 다른 지수를 쉽게 이용하고는 있지만 점차, 중요한 것은 논문이 게재되는 학술지의 가치가 아니라, 어떤 내용의 연구를 했는가로 생각이 옮겨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던 고대의 과학을 지나 현대 과학이 지향하는 종착지가 인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연구결과는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나온 지 100년이 넘는 이제는 IF를 넘어서 새로운 개념의 지표가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용도만을 직접 측정하는 말단적 방식이 아닌, 과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의 개발은 어쩌면 본질적인 부분을 보고 판단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한국인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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