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런 법'이 있다. 아니 없는데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 개정된 주택법시행령에서 공동주택관리에 관한 부문이다.
▲ 가기천 전 충남도의회 법제담당관 |
이 부분만 보면 아무런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최저금액이 예산액이나 설계액을 초과하더라도, 낙찰자로 정해야 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아파트에서 설계금액이 3000만원인 공사를 하려고 입찰을 실시했는데, 응찰자가 각각 4000만원부터 6000만원을 써냈다면 최저가격인 4000만원으로 응찰한 사업자와 계약을 해야 하고 초과되는 1000만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약상한선인 '예정 가격'을 정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국토해양부에 질의를 하자 “예정가격에 의한 입찰 방식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를 어기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재차 질의에서는 “준비된 예산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되더라도 유효한 것”이라고 답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시에서는 “입찰금액이 책정된 예산을 상회했을 경우는 적정한 예산 확보를 통해 시행하라”는 취지로 회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인 답변인가?
첫째, '예정가격' 작성에 대해서는 법령과 시행규칙, 고시 등 어디에도 명시된바 없다. 즉,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지 않음에도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 예정가격을 정하지 않으면 입찰자 모두가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을 써내도 그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낙찰자를 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국가계약법 등에는 경쟁입찰에서의 낙찰자 결정은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로 되어 있고, '입찰 전에 낙찰자 및 계약금액의 결정기준으로 정하기 위해 설계서 등에 의해 미리 '예정가격'을 정하고, 그 이하의 금액으로 입찰한 자를 낙찰자로 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국토부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입찰서의 최저금액이 예산액을 상회했다면 추가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의 답변대로라면 예산이나 설계금액은 의미가 없게 된다. 예산은 입찰 결과에 따라 확보해야 한다는 뜻과 같기 때문이다.
넷째, 공동주택에서 시행하는 공사는 대체로 일반적인 공사이므로 경쟁입찰에서는 입찰금액을 기준으로 삼으면 충분한데도, '예정가격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발주기준과 입찰가격, 산출내역서를 비교 검토하라'는 것이라는 구의 답변 역시 납득할 수 없는 사항이다. 또 다른 문제의 하나는 사업자 선정과 계약, 지출의 모든 과정을 아파트관리업체가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파트의 주인이고, 사업비를 직접 부담하는 입주자는 배제돼 있다. 또한 계약과 지출을 분리하는 회계의 기본 원칙이 무시된 것이다.
그동안 아파트의 사업에서 예정가격의 유출, 담합 등의 비리가 간간이 보도되었다. 이번 법령 등의 개정은 그러한 부조리를 막아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비중을 두다보니 또 다른 부작용이 있게 되는 것이다. 가령 다수의 예정가격을 정하고 입찰 당일 입찰참가자의 추첨으로 선택된 복수의 가격을 평균해 산출하는 등의 개선방안을 마련해볼 수 있는데도 납득할 수 없는 공허한 답변만 들어야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
한 후배가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선배는 그런 경우가 없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반성문을 쓰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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