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가기천]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시사에세이]가기천 전 충남도의회 법제담당관

  • 승인 2010-11-15 14:10
  • 신문게재 2010-11-16 20면
  • 가기천 전 충남도의회 법제담당관가기천 전 충남도의회 법제담당관
이치에 맞지 않거나 상식에 어긋나면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그런데 '이런 법'이 있다. 아니 없는데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 개정된 주택법시행령에서 공동주택관리에 관한 부문이다.

▲ 가기천 전 충남도의회 법제담당관
▲ 가기천 전 충남도의회 법제담당관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면 예산을 세우고 설계를 한 다음 사업자를 선정하는데 여기에 '이런 법'이 있는 것이다. 즉 사업자 선정방법은 국토해양부의 고시에 따라 '최저낙찰제'로 되어있는데, 이는 입찰에 참여한 업체 중에서 가장 적은 금액을 써낸 업체를 낙찰자로 한다는 뜻이다.

이 부분만 보면 아무런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최저금액이 예산액이나 설계액을 초과하더라도, 낙찰자로 정해야 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아파트에서 설계금액이 3000만원인 공사를 하려고 입찰을 실시했는데, 응찰자가 각각 4000만원부터 6000만원을 써냈다면 최저가격인 4000만원으로 응찰한 사업자와 계약을 해야 하고 초과되는 1000만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약상한선인 '예정 가격'을 정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국토해양부에 질의를 하자 “예정가격에 의한 입찰 방식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를 어기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재차 질의에서는 “준비된 예산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되더라도 유효한 것”이라고 답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시에서는 “입찰금액이 책정된 예산을 상회했을 경우는 적정한 예산 확보를 통해 시행하라”는 취지로 회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인 답변인가?

첫째, '예정가격' 작성에 대해서는 법령과 시행규칙, 고시 등 어디에도 명시된바 없다. 즉,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지 않음에도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 예정가격을 정하지 않으면 입찰자 모두가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을 써내도 그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낙찰자를 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국가계약법 등에는 경쟁입찰에서의 낙찰자 결정은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로 되어 있고, '입찰 전에 낙찰자 및 계약금액의 결정기준으로 정하기 위해 설계서 등에 의해 미리 '예정가격'을 정하고, 그 이하의 금액으로 입찰한 자를 낙찰자로 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국토부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입찰서의 최저금액이 예산액을 상회했다면 추가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의 답변대로라면 예산이나 설계금액은 의미가 없게 된다. 예산은 입찰 결과에 따라 확보해야 한다는 뜻과 같기 때문이다.

넷째, 공동주택에서 시행하는 공사는 대체로 일반적인 공사이므로 경쟁입찰에서는 입찰금액을 기준으로 삼으면 충분한데도, '예정가격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발주기준과 입찰가격, 산출내역서를 비교 검토하라'는 것이라는 구의 답변 역시 납득할 수 없는 사항이다. 또 다른 문제의 하나는 사업자 선정과 계약, 지출의 모든 과정을 아파트관리업체가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파트의 주인이고, 사업비를 직접 부담하는 입주자는 배제돼 있다. 또한 계약과 지출을 분리하는 회계의 기본 원칙이 무시된 것이다.

그동안 아파트의 사업에서 예정가격의 유출, 담합 등의 비리가 간간이 보도되었다. 이번 법령 등의 개정은 그러한 부조리를 막아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비중을 두다보니 또 다른 부작용이 있게 되는 것이다. 가령 다수의 예정가격을 정하고 입찰 당일 입찰참가자의 추첨으로 선택된 복수의 가격을 평균해 산출하는 등의 개선방안을 마련해볼 수 있는데도 납득할 수 없는 공허한 답변만 들어야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

한 후배가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선배는 그런 경우가 없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반성문을 쓰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2.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3.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4.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5.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1.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2.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3.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4.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5.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