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함께 걷지만 영화의 걸음은 밝고 경쾌하다. 소소한 웃음이 잔잔한 흐름에 잔물결을 일으켜 지루하지 않다. 극진하게 사랑하고 사소한 문제로 헤어지는 연인들의 이야기도 성장이야기도 충분히 재밌다.
이 영화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는 거다. 화려하거나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곳이 아닌 우리나라가 가진 소박한 아름다움이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푸근한 시골, 시원한 바다, 한적한 절, 소박한 국도 등등. 아기자기한 풍경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이 시인(詩人)으로 설정된 것도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일 것이다.
주인공인 노총각 시인은 마흔 가까운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백수다. ‘부족한 이해심과 넘치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찌질남. 이 마이너리티를 보듬는 임순례 감독의 따스한 시선이 느낌표를 더한다.
옛 상처를 잊지 못하는 남자의 복잡한 심리를 능숙하게 표현해낸 김영필. 쿨한 여성을 절제된 연기로 그려낸 공효진의 연기도 좋다.
깨달음의 과정을 그리지만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고행과 과장된 전시가 없는 임순례식 ‘구도영화’는, 그래서 아름답고 경이롭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가을에 딱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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