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초능력자가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는 가끔씩 생활비를 훔치러 사채업자나 전당포에 찾아갈 때만 능력을 사용할 뿐이다. 어느 날 전당포를 털다가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을 만나게 되고, 당황한 나머지 전당포 주인을 죽이고 만다.
이 영화, 묘하다. ‘초능력자’는 상식을 뒤집는다. 초능력자를 타이틀롤로 내세웠지만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늘을 날고 눈에서 레이저빔을 내뿜는 특수효과는 당연히 없다. 할리우드 영웅과는 근본적으로 태생이 다르고, 전개 방식 역시 기존의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초능력이란 판타지적인 소재를 가지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만큼 신선함과 재기발랄함으로 똘똘 뭉쳤다.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탓에 어머니에게 버려진 채 외롭게 살아간다. 이름도 없다. 가끔씩 생활비를 훔치러 사채업자나 전당포에 찾아갈 때에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뿐이다.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순수하고 진지한 청년이다. 욕심도 편견도 없이 늘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아간다. 그의 이름은 규남이다. 평범한 듯하지만 초능력자에게만큼은 특별하다. 초능력이 그에게만 통하지 않으므로.
초능력자와 규남의 ‘부딪침’은 강렬하고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다수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집단권력의 폭력과 이에 대항하는 무모한 투사의 상징을 만들기도 하고,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비운의 ‘커플’로 마주서기도 한다.
하지만 둘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둘은 상대로 말미암아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가 명확해지는 보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해,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하고 묻고, 초능력자는 규남에게 “넌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하고 탄식한다. 그래서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따로이자 하나다.
그건 우리 안의 두 얼굴이기도 하다. 유일무이하고 타인들에 비해 좀 특별하고 얼마쯤 외롭다고 믿지만,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 악착같이 노력하는 이율배반. 사람들과 어울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주인공의 의지도 그렇다.
초능력자는 거처인 호텔 방에 틀어 박혀 서울거리 모형 안에 자신의 피겨를 만들어 넣는다. 인형은 그가 현실에선 결코 입지 않을 빨강색 옷을 입고 한손을 들어 세상에 쾌활한 인사를 보낸다. 그는 군중에 간절히 섞이고 싶다. 김민석 감독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귀착점이 이것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는 규남이 진정한 초능력자라는.
초능력자와 규남이 서로 다른 이유에서 어떤 사물에, 혹은 누군가에게 기대는 이미지도 그렇다. 둘의 기댐은 영화에서 꽤 인상적인 순간을 만든다. 감독은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물이 가득 찬 잔 같아서 조금만 기울어져도 물이 쏟아질까봐 누구한테 잘 못 기대지 않는가”하고 들려준다.
‘초능력자’는 오락영화적인 긴장과 쾌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머물러야 할 장면을 서둘러 마무리짓는가 하면 긴박감을 조성해야 할 고비에는 발이 무겁다. 서스펜스와 액션의 긴장을 조성하는 손끝도 투박하다. 그러나 탄탄한 구성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품은 캐릭터의 창조는 그런 약점들을 덮고도 남는다. 물론 두 꽃미남 배우의 매력을 포함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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