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진 한남대 문창과 교수 |
장 보드리야르라는 이는 오늘날 생산의 신화는 소비의 신화 창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음을 역설한다. 소비가 모든 생활을 통제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바꾸어 놓았듯,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육체도 상품의 기호 이미지로 가치화되어 교환 소비된다. 이제 육체는 금지와 억압과 은폐의 대상이 아니라, 숭배와 추앙과 과시의 대상이다. 더 이상 감출 것이 아니다. 예전처럼 권력은 육체와 성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육체와 성의 관리와 통제를 통한 질서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그에 관한 내러티브을 생산하며 쾌락의 신화를 유포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사물을 닮아가는 현상을 물화(物化)라 불렀지만, 오늘날 인간의 육체는 새로운 생산과 소비의 원천이다. 일찍이 보드리야르는 이것을 ‘육체의 재발견’, 푸코는 ‘생체권력’이라 표현했다. 어쨌든 육체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현실을 반영하는 매혹적 대상이다. 몸에 대한 매혹이라 할 만한 문화현상은 시장에서 팔리는 육체유지용품, 이를테면 다이어트, 슬리밍, 운동, 건강, 화장용품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40대 나이에 20대 몸매를 가진 ‘몸짱 아줌마’, 그 건강하고 관능적인 몸매에 대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칭송이 자자하다. 역시 20대 피부를 가진 40대의 어느 여배우는 세안에만 무려 40분을 쓰고, 또 어느 배우는 하루에 삶은 고구마 한쪽만으로 여신의 맵시를 만들었단다. 이 놀라운 고행은 마치 중세의 수도승을 연상시킨다. 대중매체는 고행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적극 장려한다. 또 ‘얼짱’들은 어떤가. 매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양식화된 육체의 이미지를 분할해 증식시키고 소비하도록 우리의 무의식을 강제한다. 아름답고 관능적이며 노골적으로 성적이고, 쾌락과 레저와 과시에 연결되어 있는 육체의 이미지는 외모와 외관의 중요성, 루키즘(lookism)을 강조하고 번성시킨다.
프랑스의 화가 장 레옹 제롬이라는 이의 「배심원 앞의 프뤼네」라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 주인공 프뤼네는 창기이다. 그녀는 아테네의 조각가 프락시틸레스가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상을 제작할 때 모델로 섰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신에게 자기의 형상을 빌려주었다는 신성모독의 죄목으로 법정에 선다. 그런데 변호를 맞은 히페리데스는 마치 동상의 제막식을 거행하듯 법정에서 갑자기 그녀의 알몸을 가린 천을 벗겨버리며 외친다. “신상에 자기의 형상을 빌려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죽여야 하는가?” 알몸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배심원들은 “저것은 신적 아름다움이다. 그 앞에 인간의 도덕과 법률은 효력을 잃는다.” 그래, 무죄다.
소비사회의 문화현실에서 육체는 쾌락과 욕망 충족의 수단이다. 육체가 젊음, 건강, 아름다움 등의 이상화된 이미지들에 근접하면 할수록 육체의 교환가치는 더욱 치솟는다. 소비문화는 인간의 육체를 아무런 수치심 없이 전시하고 소비하는 것을 허용한다. 아니 적극 권장한다. 이제 정치 윤리적 ‘아버지의 법’은 미의 여신에게 이양된다. ‘아버지의 법’은 윤리 도덕적 금지보다는 육체의 미적 장려를 적극 권고한다. 루키즘, 어떤 이는 뭘 해도 용서되고, 또 어떤 이는 뭘 해도 욕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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