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판교' 사건 당시 작은 할아버지(지응용·당시 61세)를 잃은 지왕병(51)씨는 간절한 심정을 이같이 밝혔다.
'제삿밥' 차려줄 아들도 없이 훌쩍 떠난 고인이 가여워 조부 제사 때 위패를 함께 모신다는 지씨는 “그렇게라도 되면 지하에 있는 작은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충청지역에서 미군 폭격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진실화해위에 신청된 13건 중 유일하게 진실이 규명된 '서천 판교' 사건(2건)의 공식 희생자는 15명.
진실 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나머지 11건의 희생자 27명까지 합치면 모두 39명이 미 전투기 무차별 사격에 목숨을 잃었다.
이는 공식 희생자 집계일 뿐 실제로는 수백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과연 누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지하에서 수많은 영혼이 통곡하고 있는 셈이다.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충청지역 미군 폭격 피해자의 사무친 원혼은 자손들이 1년에 한 번 지내는 제사로 달랠 뿐이다.
위령제는 고사하고 진실을 전후세대에게 알리려고 하는 노력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활발히 위령 사업이 진행되는 다른 사건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일대에서 미 전투기에 의해 300여 명이 학살된 '노근리' 사건은 지난 2004년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한 이후 진상이 규명됐고 미국의 사과까지 받아냈다.
올해에는 발생 60년을 맞아 합동 위령제가 열릴 예정이다.
또 전액 국비가 투입돼 위령탑, 평화기념관, 교육관 등이 들어서 '노근리' 사건의 교훈이 후대에 전달하게 된다.
'대전 산내학살' 사건 역시 위령 사업이 활발하다.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 3400여 명이 국군과 경찰에게 학살된 이 사건은 올해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이 규명됐다.
진실 규명 이전에도 시민단체와 유가족들은 위령제를 매년 실시, 올해로 벌써 11회를 맞았다.
특히 올 위령제에선 가해자 측인 경찰이 나와 추도사를 밝히는 등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의 노력도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선 '서천 판교' 사건 등 충청지역 미군 폭격사건 피해자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지자체와 교육 당국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활동에 관여한 이화여대 사학과 정병준 교수는 “가해자 여러 가지 문제, 희생자 위령 사업, 배상 및 보상 등을 (후대에) 공적인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지자체와 교육기관의 다양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예컨대 가칭 과거사총정리 재단 발족과 교육사업 진행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제일·이희택·서천=나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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