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유언장을 남기는 문화가 익숙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것이 현실이다. 지난 1월 말 씨티은행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호주, 인도,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아태지역 11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면 사후에 대비해 유언장을 작성한 비율은 한국이 1%로 조사대상국(평균 6%) 중 가장 낮았다. 부모 사망 이후 상속재산을 둘러싼 형제·자매 간의 법적 분쟁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문화적인 이유로 여전히 유언장 작성은 꺼리고 있는 것이다.
자손들을 모아놓고 말로 하는 '구두 유언'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법적인 효력이 없는 데다 언제든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어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언장을 남기는 방법은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 선뜻 결정하기가 어렵다. 이 같은 고민을 덜어주기 위한 신탁상품이 올해 들어 은행과 증권 관련 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일명 '유언신탁' 상품으로 유언장 작성에서 보관 및 사후 집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를 대행해 주는 것이다.
이 상품의 특징은 고객이 사망하면 문서대로 유언을 집행해 상속재산을 이전하고 명의 변경 및 배분뿐만 아니라 생전에 상속상담, 고객의 자산관리업무도 수행하는 실버상품이다. 특히 장애가 있는 자녀나 이복자녀를 둔 다양하고 특수한 상황에서 상속하면 사후에 발생할 수 있는 유산 배분 문제를 생전에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유언신탁은 현금, 유가증권, 부동산 등 모든 상속 예정 자산에 대해 일괄적으로 유언사항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자산관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유언신탁의 가입대상은 대부분 만 17세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고 취급 금융회사에서 법무법인, 세무법인, 대형병원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 사후 법적 효력을 보장하고 있다. 공정증서 작성을 통한 유언이 상속 금액에 따라 최대 수백만원의 수수료가 소요되는 데 비해 유언신탁은 연 5만~10만원의 비용으로 유언장을 관리할 수 있고 분실이나 위조의 위험도 없다. 이와 함께 별도의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더라도 유언신탁 계약서가 신탁법상 유언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추고 있다.
한편, 유언신탁은 가입자가 살아있는 동안 투자자금 운용수익의 일부를 노후생활자금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아울러 상속할 재산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상속세 등에 대한 평가를 미리 받아볼 수도 있다. 즉 생전에 상속세 납부에 따른 현금 확보와 절세 등의 컨설팅을 함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의 인구비중이 11%였는데 40년 후인 2050년에는 그 비중이 38%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언신탁은 노후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공=금융감독원 대전지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