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언복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천안함이 두 동강 나 침몰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꽃다운 젊은이들의 희생이 가슴 아파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의 안녕을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기도는 헛되어 무려 46명이나 되는 장병들이 결국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인양작업과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저마다 슬프고 딱한 사연들이 전해지면서 보고 듣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날마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희생 장병들이 하나같이 힘없고 가진 것 넉넉지 못한 서민 집안의 자식들이라는 점 말이다. 그 많은 '의원님'들이나 장·차관 부모를 둔 장병은 한 명도 없었고, 이름 깨나 날리며 행세하는 집안의 자식도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이름도 빛도 없는 민초들의 자식들만 있는 것인지 난 그게 참 이상했다. 생전에 그들의 넋을 삼킨 백령도 앞 바닷바람 한 가운데 노출되었던 것처럼, 가정과 사회의 허약한 보호막 속에 살아 온 젊은이들만 희생된 것 같아 난 그 까닭이 참 궁금했다.
국무총리를 포함해 새로 임명된 고위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회 청문회 소식이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정상적으로 현역 복무를 마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친 김에 인터넷상에 올라 있는 묵은 자료를 더듬어 보았다. 지난해 9월에 작성된 한 자료에는 무려 여덟 명의 장관이 '군면제'자였다. 대통령, 국무총리, 비서실장, 감사원장, 식품의약품안전청장 등도 모두 병역 면제자였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와대 지하벙커에 모인 정권 핵심인사들 가운데 군에 갔다 온 사람은 김태영 국방장관뿐이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에는 어쩌면 그리 군대도 못 갈 만큼 심신에 문제가 있었던 이들이 많은 것일까.
여당의 대표, 대통령, 국무총리가 모두 병역 면제자들인 나라에서 '공정사회론'을 주창하고 나섰다. 지난 9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국정운용의 중심기조'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이 그 발단이다. 우습다. 그 좋은 말이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고 그저 공허하게만 들린다. 어이가 없는 때문이다. 취임 초기부터 인맥과 학맥의 불공정한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일일이 거론하기에도 부끄러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해 온 대통령이 앞장 서 외칠 만한 소리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 현대사에 가장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내세운 국정지표가 '정의사회 구현'이었으니 이대통령의 공정사회론 정도는 애교에 지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부정과 부패는 지도층의 관행이 되고 정의는 한갓 힘없는 자의 꿈이 된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정'이란 1%의 지도층이 외칠 만한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99%의 민초들에게나 어울리는 용어이다. 불공정한 게임의 룰 안에 안주해 있으면서 마음껏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상류의 지도층이 앞장서 떠들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불공정한 사회의 갖가지 병리현상이 부담스럽다면 그들은 그저 조용히 앉아 자기를 성찰하고 혁신을 도모하면 그만일 것이다. 외치고 떠들 수 있는 건 힘없는 민초들의 몫이며, 뉘우치고 반성해야 하는 건 상류 지도층의 몫이다. 가진 사람이 덕 있고, 힘 있는 사람이 너그러우며, 배운 사람이 솔선해야 하는 것은 공정사회로 가는 왕도중의 왕도이다. 소수이지만 상류의 지도층이 앞장서 모범을 보인다면 '공정사회'는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지표가 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떠들고 북을 쳐 대도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정의에 찌든 민초들은 이제 춤출 기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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