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현 서산예천초 병설유치원 교사 |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올곧은 성품을 가진 이의 일화를 자주 들려주며 내가 스스로 그 일화를 통하여 깨닫도록 하는 방법을 택하셨다. 그리고 그 일화의 주인공은 주로 할아버지가 등장하곤 하셨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셨던 할아버지께서는 교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으로서의 고매한 인격과 아이들을 향한 온화한 마음이라고 생각하시고 늘 따뜻함으로 아이들을 보듬으셨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탓일까 나는 교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할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보이셨던 그 마음, 진심어린 태도, 넓은 포용심을 본받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이들을 대할 때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작은 말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만하게도 그런 마음가짐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달콤한 환상 속에 살고 있던 나를 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
단연 돋보였던 우종원(가명)이라는 아이는 나의 말을 듣고 있다가도 다른 소리가 나면 금방 그 곳으로 시선이 옮겨가고, 허락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고 팔과 다리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등 과다한 활동 수준을 보였다. 동료 선생님들과 상의해본 결과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증상을 보이는 아이였다.
좀 더 솔직한 내 방식대로의 표현에 의하자면 종원이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아이였다. 수업도 종원이가 돌발행동을 보일 때마다 흐름이 끊어져 매끄럽지 못했고, 늘 준비한 것을 다하지 못한채 부랴부랴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종원이를 내 마음속 문제아로 낙인 찍어버린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차창 밖으로 종원이가 보였다. 도로가에서 친구도 없이 홀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는 종원이의 모습은 그동안 활기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종원이를 너무 편향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건 아닌지, 문제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노력은 했었는지, 그 아이의 행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았는지…. 만감이 교차했다. 교사의 인격적 자질에만 치중할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착한 선생님,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는 기억될 수 있겠지만, 10년이 지난 후에도 그저 착한 선생님으로 불리는 정체된 교사가 되기는 싫었다. 나에게는 변화가 절실했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종원이와 함께하는 수업은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적어도 그 아이의 문제 행동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나의 그런 마음을 종원이에게도 표현하고 있다. 종원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눈도 생겼다. 그 아이의 과다한 활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주는 방법들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새내기 교사로서의 첫 성장통을 멋지게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이해하는 태도는 새내기 교사가 지녀야 할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격적 자질의 바탕 위에 전문성이 더해질 수 있도록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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