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제봉 국제로타리 3680지구 전 총재 |
조선시대 강경은 전국 최대의 젓갈 주산지였으며 한양 마포나루에 젓갈을 대던 전국의 포구 중 강경이 가장 컸다고 한다. 운치를 더한 돛단배에 실려 마포나루로 올라온 강경 젓갈은 지금의 남대문시장 일대를 시작으로 한강 수로를 타고 여주, 안성, 수원까지 퍼져 나갔으니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강경에 넘쳐난 것은 젓갈만이 아니었다. 강경 포구는 금강 수계의 관문에 해당돼 교역을 위한 최적지였으며 성어기엔 하루 100여 척의 선박이 각종 해산물을 싣고 강경 포구를 찾았다고 한다. 이렇게 서해의 풍부한 수산물과 금강이 함께 어우러진 드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강경은 평양, 대구와 더불어 조선 3대 시장의 하나로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길지 않았다. 현대화에 밀려 상업도시로서의 기반이 점점 흔들리면서 강경 포구의 화려했던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과거 상업도시로서의 명성답게 그 지위를 지키려는 지역민들의 노력은 가히 드라마틱한 연출을 토해낸다. 그동안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상가를 지켜온 토속상인들의 집념과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한 신세대들의 감각이 맞아 떨어지면서 전통상품에 눈을 돌려 특성화 상품으로 개발하게 된 것이 오늘의 강경 젓갈인 셈이다.
강경이 젓갈 주산지로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은 불과 십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 상인들이 새로운 젓갈을 개발해 선보이고 토굴 저장 숙성법이 각광받으면서부터 젓갈시장의 기반을 이룬다. 강경읍에 들어서면 온통 젓갈 판매점들이 널려있어 한국인이 먹는 젓갈의 60% 이상이 이곳을 거쳐 간다고 하니 그 물량만도 상상을 초월한다. 또 매년 김장철을 앞두고 강경발효젓갈축제가 개최되는데 금년에도 지난 10월 20~24일 젓갈 축제가 열려 47만 여명의 관광객이 몰려와 역시 강경이 젓갈의 중심지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젓갈은 종류도 다양해 새우젓, 조개젓, 어리굴젓, 오징어젓, 창란젓, 명란젓, 꼴뚜기젓 등이 젓갈을 대표한다. 이 외에 우리 뇌리에서 익숙하지 않은 젓갈들도 상당수 있어서 그 이름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이제 젓갈 올림픽까지 열린다는 강경, 젓갈 올림픽의 진가는 역시 먹는 이의 구미에 달려 있다. 식감과 입맛에 따라 감동을 받으면서 젓갈의 선택이 좌우되기에 젓갈 정식을 마주하게 되면 수저 놀림이 분주해지면서 식욕을 돋워준다. 특히 명란젓과 청어알젓은 인기가 최고조로 달해 젓갈 중에서도 최고의 맛으로 손꼽힌다. 강경 젓갈, 대장금이 부활해 오늘날 상을 차린다 해도 '한 번에 밥 세 그릇을 비우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그냥 떠도는 이야기가 아닌 듯 싶다.
필자의 고향, 논산시 채운면 배꽃동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경, 6년 동안 중등교육을 받으며 청운의 꿈을 키워갔던 강경, 이제 시대의 변천에 따라 쇠퇴해가는 강경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더했으나, 특유의 생존력과 주민의 단합된 의지로 과거 명성을 날렸던 옛 강경상업도시를 기적적으로 살려낸 것은 역시 효자상품인 젓갈에 있음을 감히 피력해 보면서, 지금도 동네 어구에 들어서면 운송수단이 취약했던 아득한 시절 마지막 우리네 소비자에게 다가온 지개장수의 정감어린 '새우젓 사려' 외침이 아직도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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