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 |
지난달 미국 미시간 공대의 동물생태학자 피터슨과 동료 연구자들은 생태학 학술지에 '관절염의 생태학'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미국 로열 섬에서 말코손바닥사슴 1099마리의 유해를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사슴의 고관절에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증상의 골관절염이 발견됐다.
사람과 유사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골관절염은 주로 고령자에게서 나타나는 질병인데, 사슴 역시 나이가 들어야 관절염에 걸린다. 이 사슴의 수명은 수컷이 17년, 암컷이 21년이다.
관절염은 사슴이 7세가 넘었을 때부터 시작돼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증가했고 사슴이 최대 수명에 이르렀을 때에는 조사한 사슴 중 절반 가까이에서 관찰됐다. 사슴들끼리 아무 걱정없이 살 수만 있다면 관절염에 걸린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섬에는 사슴뿐만 아니라 사슴의 포식자인 늑대도 서식하고 있다. 사슴이 다리가 아파 늑대로부터의 방어능력이 약해지게 되었을 때 관절염은 사슴의 생과 사를 결정짓는 치명적인 질병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슴이 관절염에 걸리는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의 경우 주로 과도한 신체 활동이나 비만으로 인한 하중으로 연골이 마모되는 바람에 골관절염이 일어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슴의 관절염에도 이와 같은 가설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사슴들은 먹이를 찾으러 더 많은 거리를 움직여야 하고, 이로 인해 연골이 더 손상을 받아 관절염에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설이 입증되려면 먹이가 풍부한 시기에는 나이 든 사슴의 관절염 발생빈도가 줄어들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피터슨은 사슴의 유해로부터 관절염의 유무를 조사하면서 사슴 다리 뼈인 중족골의 길이도 함께 측정했다.
중족골의 길이는 사슴의 출생 전후시기 영양상태의 척도가 되는데, 사슴의 출생 전후시기에 어미 사슴으로부터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으면 중족골의 길이가 길어진다. 하지만 반대로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면 중족골의 길이는 짧아진다. 피터슨이 밝힌 중요한 사실은 사슴의 골관절염 발생 빈도가 바로 이 중족골의 길이와 반비례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태어날 때부터 성장을 활발히 하는 유년기까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사슴은 자라서 나이가 들었을 때 관절염에 더 많이 걸리게 된다.
관절염과 영양실조의 상관관계는 인류에게도 적용시켜 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야생동식물을 수렵·채취해 먹어왔던 미국 원주민들이 옥수수 재배를 시작하면서 주식을 옥수수에 의존하게 되었을 때, 영양결핍으로 인해 원주민들의 관절염이 크게 증가한다.
반면 수명 역시 짧아지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서만 2700만 명, 또한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 든 우리나라도 중장년층의 4분의 1 정도가 골관절염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사슴 관절염에 대한 이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터슨의 의견이 맞는다면 지금 임산부와 어린이들에게 영양 결핍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아이들이 중장년이 되었을 때 골관절염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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