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전 충남경찰청장·치안발전포럼 이사장 |
그러나 성질 잘 내는 뚝별씨임은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쪽이 확연하게 갈린다. 안티그룹에 신경 쓰지는 않는다. 그냥 놔둔다. 언젠가는 이해하고 오려니 한다. 싫은 표정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수없이 고치라 이른다. 엄벙뗑해도 받아들이시게. 오사리잡놈도 이해하며 사시게 하며 타이른다. 좀체 고쳐지지 않는다. 잘못(非) 품고 있음을 알고 있는 이 나이. 여전히 안고 산다.
때는 바야흐로 디지털 전성기. 사고도 행동도 애매함을 거부한다. 0이냐 1이냐다. 통신의 필수품 컴퓨터와 휴대폰. 역시 이 두 숫자로 움직인다. 다른 숫자는 없다. 소수점도 없다. 단 두 개만으로 이루어진다. 명쾌하다. 논리 또한 정연하다. 감정의 기복과 낭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러고 보면 그 성격과 취향에 딱 맞는다. 머신이다.
인간세상은 어디 그런가. 기기처럼 돌아가는가. 7이 있어야 한다. 9도 쓰게 된다. 분수도 이용한다. 손가락이 만지고 치는 걸 보라. 온갖 문자와 숫자와 기호다. 그들의 조합이다. 조화로운 합체. 삶의 근본방식이다. 아스팔트 틈새에 핀 꽃. 야생화. 홀로 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이로움 발견. 이 풀 저 풀 옹기종기 붙어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핀다. 왜 모여 사는가. 혼자 서 있으면 휘청거려서 그렇다. 코스모스는 안 그런가. 이끼도 나무도 그렇다. 비바람이 거세다. 내리는 눈이 무겁다. 함께 살면 함께 이겨낸다.
사람인들 혼자 사는가. 과학과 기술 덕분에 편해지기야 했다. 고독감이나 상실감이 사라지는가. 접촉하지 않고도 소통하는 시대. 메시지 교신만으로 정 통할까. 겉 정만 횡행하는 건 아닐까. 사람이란 비틀거리는 존재. 권세에 명예에 돈에 먹힌다. 어느 은행의 역대 행장이 차명계좌 운용. 필요할 때 꺼내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러고서도 서로 까발린다.
인간이라는 증거다. 이런 모습 한두 번 보는가. 알만한 기업인이 그러기도 한다. 당대의 실세도 그리 한다. 욕심에 휘둘렸다. 먹고 입고 자는데 들어가는 소유. 대저 어디가 그 상한선일까. 동식물 거개가 배고픔 면하면 거기서 그친다. 더위와 추위 가리는 정도에서 멈춘다. 인간 역시 생물. 왜 그리 하지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 머리가 너무 좋아서다. 좋은 두뇌 선한 일에 돌리면 어떨까. 세상에 어디 흔들리지 않는 사람 있는가. 너도나도 비틀비틀. 휘청휘청. 위태롭게 산다. 단호하게 세상 사는 사람 몇이나 되는가.
우리도 모여 산다. 뜻으로 모여 산다. 정으로 모여 산다. 한 세상 살아나감에 가릴 거 있나. 너하고 나는 다르다. 선 긋고 살아야 속 시원한가. 불편하다. 거북하다. 삶의 방향타를 확 틀어야겠다. 잘못했으면 찾아가 화해한다. 보고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찾아가 얼굴 본다. 혐오와 증오가 무슨 약 되나. 보듬고 등 두드려 보리라.
세상에 대하여 그렇다(Yes!) 하는 이 찾아 나서야겠다. 김스 김밥집에 투자하라 해야겠다. 돈은 어디로 보낸다? 당신 마음통장. 눈물 날 때 인출해서 행복 사용하라 해야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