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사망하자 속이 탄 경찰청은 ‘배우’를 내세워 사건을 종결지으려 한다. 승진을 미끼로 광역수사대 최철기에게 사건을 맡긴다. 최철기는 스폰서인 장석구를 이용해 ‘배우’를 세우고 대국민 사기극을 멋지게 마무리한다.
충무로의 재간꾼 류승완 감독이 멋진 한 방을 터뜨렸다. ‘부당거래’는 그가 만든 영화 중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힐만한 수작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꽉 짜인 플롯, 생생한 캐릭터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그야말로 파워풀하다.
흥미로운 건 살을 내주는 대신 뼈를 취한다는 점이다. 트레이드마크인 액션이 없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눈요깃거리 액션 장면은 없다. 웃음기도 가셨다. 유머 코드들이 있지만 뼈가 있는 일침, 현실을 비판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수준이다. 그의 것이라 여겨졌던 것들을 걷어낸 ‘부당거래’는 류승완 영화 같지 않은 영화다. 그래서 가장 자연스럽다.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발라냈더니 진정한 스타일이 고개를 내민다.
액션과 웃음이 빠진 자리는 ‘말’이 채운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치고받는 말의 액션은 마치 류승완 특유의 액션을 보는 것 같은 합의 쾌감이 살아있다. 박력과 투지가 넘친다. 그것이 오롯이 류승완표 영화임을 입증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 검사와 스폰서의 더러운 유착, 대형건물 입찰비리,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 이처럼 ‘부당거래’가 포착하는 건 법과 정당성이 상실된 대한민국의 현재다.
류승완은 물고 물리는 부패의 고리를 에두르는 법 없이 정공법으로 생생하게 드러낸다. 권력층을 향한 도발을 그저 건드리고 비꼬는 정도가 아니라 끝까지 밀어붙인다. ‘경향, 한겨레, 조선, 동아’ 같은 구체적인 명칭이 등장하고 실제 인물을 패러디한 것 같은 이름 등 거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듯 작정하고 덤벼든다. 좀 심하다 싶은 대목들도 “다 알면서 왜 그래?”라는 듯 좀체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박력 넘치는 통렬한 현실 비판을 누아르가 주는 장르적 재미에 담아낸 솜씨가 발군이다. 얽히고설킨 캐릭터들을 뚜렷하게 살리는 세밀한 묘사, 비장미 가득한 촬영, 긴장의 고조를 적확하게 짚는 음악이 단단하게 뒷받침한다.
배우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이 각각 출세에 눈이 멀어 물불가리지 않는 경찰, 스폰서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검사, 이권을 위해서라면 피를 묻히는 일도 서슴지 않는 스폰서를 연기한다. 연기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세 연기파 배우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이들은 누가 더 악당인지 내기를 하는 것 같다. 비열하고 치사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특히 이들이 ‘식구’를 언급할 때 그렇다. 이들 또한 자신이 속한 조직을 살리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다구니, 이전투구를 벌이는 거다.
류승완은 자신의 에너지를 잃지 않으면서 더욱 노련하고 세련돼졌다.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웰 메이드 장르 영화. 당대의 현실과 장르 영화가 만나는 꽤 흥미로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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