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그 소설에는 한센병을 앓는 소록도 환자들의 축구 이야기도 애잔하게 묘사돼 있다. 군민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소록도 축구팀은 '소록도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러주는 섬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연분홍 벚꽃 흐드러지게 핀 고갯길을 넘어 갔다. 권총을 빼들어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군복차림의 감독 한 사람을 제외하면 도내 춘계축구선수권 대회에서 그들을 응원하는 관중은 없었다.
공을 세차게 찬 뒤 소록도 선수들은 발이 아파 운동장에 나뒹굴었다. 대체 선수가 바닥나자 운동장에 뒹구는 환자의 유니폼을 대신 입고 감독이 뛰었다. 손가락이 없고 발가락도 잘려나간 선수들은 솜으로 축구화의 코를 메우고 공을 찼다. 소록도 시인 한하운이 쓴 시 마냥,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긁으면 간밤에 얼었던 손가락 한 마디가 땅 위에 떨어지는,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 가락이 또 한 개 없어지는, 발가락 없는 그 발로 그들은 그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떨어진 발가락'이란 시에서 김경경은 어떤 날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밤새 발가락에 통증을 느끼며 백씨 아저씨는 긴 밤을 하얗게 보냈다. 여명에 달려간 치료실 한 켠에 쪼그려 앉아 간호를 기다렸다. 둘둘 감은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던 간호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발가락 한 개가 없어졌다. 떨어져 나간 건 새끼 발가락이었다. 무심한 봄 햇살은 치료실 창문을 꽉차게 들어와 넘쳐나는데 백씨 아저씨와 간호 사이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눈동자에 바다가 들어온 간호는 캐리로 '발가락을 주웠다'.
꽃봉오리 같은 시절의 김경경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간호의 삶을 살아보겠노라며 소록 나루에 도착했다. 스무살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그러나 그에게 소록도는 소소리바람처럼 맵고 찬 먼 마을이었다. 눈썹 없는 사람들, 손발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고름, 그 살들이 썩어가는 냄새와 납작하게 뭉개진 코, 함몰된 구멍 두 개만 남겨두고 사라져 버린 눈동자.
처진 그들의 입술에서 질질 침이 흘렀다. 칠흑처럼 어두컴컴한 방에 팔다리가 없는 할머니가 의족을 풀어 옆에 재우고 혼자 누워 있었다. 어린 사슴처럼 놀란 김경경은 보따리를 싸서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철조망 너머로 달려간 소록도의 아이들처럼 김경경도 부모 품에 안겨 울었다.
“딸아, 그래도 소록으로 돌아가거라.” 그의 아비는 김경경을 돌려 세웠다. 그는 다시 섬으로 들어가 질기고 오랜 '신고식'을 치렀다. 환자들의 피고름을 닦아주는 청춘의 시간들이 물처럼 흐르면서 김경경에게 '내 할매', '내 할배'가 늘어가고 김경경도 그들의 '내 간호'가 되었다. 환자들의 떨어진 발가락을 묻어 둔 양지바른 비탈의 나무를 보며 시를 쓰고, 건너가지 못한 환자들의 고향 앞바다에서 제각각 사연으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또 시를 썼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 소록의 이야기로 등단 시인이 되었다.
김경경 시인의 삶의 여러 삽화 중에서도 필자는 동박새처럼 찌찌지지 울며 둥지로 쫓겨 온 딸과 아비의 상봉에 목이 매었다. 무서워 죽을 것 같아 뛰쳐나온 그곳으로 사랑하는 딸을 다시 보내며 성심을 다해 환자들의 발가락 떨어진 발을 씻겨드리라던 시인의 시처럼 아름다운 아버지. 그러나 한 켠에서, 흔전하게 살아 온 장관의 딸은 그의 아버지가 수장으로 재직하는 외교부로 달려가 특별 채용되었다. 특혜 논란 속에 딸의 합격은 취소되고 추레한 모습의 장관은 결국 사퇴했다. 두동진 세상의 엇갈리는 징표들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