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찬 목원대 교수 |
전통적 결혼관에 따르면, 여자의 인생은 아이를 가지고 이를 길러 냄으로써 완성된다고 믿었다. 많은 아이를 갖는 것을 더 없는 신의 축복으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전통적 성경해석에 따르면, 성행위 자체와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행위를 동일시함으로써 결혼을 남녀의 온전한 육체적 결합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피임기술의 발전은 성과 재생산의 문제를 분리시켰다. 혹자는 피임기술이 성적 무정부 상태를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1964년 타임지는 성혁명은 '성행위는 개인을 구원하고, 리비도(성적 충동)는 개인을 자유롭게 한다'는 메시지에 근거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미국에서 범죄로 여겨졌던 피임기술을 통한 출산통제는 여성과 의사들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성취되었다. 피임기술은 아담과 이브가 출산의 고통을 안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인류역사상 가장 큰 사건인지도 모른다.
피임기술이 전통적 결혼관의 해체에 기여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경험한 압축 산업화와 뒤따라 진행된 탈근대화는 성, 결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인식에 혁명적 변화와 혼란을 가져왔다. 미국여성들이 아직도 효과적인 가족계획(effective family planning)을 위한 피임기술 그리고 낙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사회는 피임기술의 무제한적 사용과 생명에 대한 마구잡이 낙태시술로 나아갔다.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개선되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피임과 낙태의 자유는 아무런 제한 없이 확대되어 왔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고, 피임혁명을 통한 산아제한은 급격히 높아졌지만 남성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태도는 변화하지 않았다.
위의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그리고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에 비해서도 아주 낮다. 일본과 함께 한국은 남성 중심적 사회로 남아있는 것이다.
남성 중심주의에 대한 한국 여성들의 도전은 흥미롭다. 위의 세 번째 통계가 보여주듯이 전문직 여성들은 추석연휴기간 동안 전통적 남성 중심의 가족행위를 이탈한다. 디지털 카메라, 아이폰, 그리고 캠코더를 휴대하고 치앙마이, 로마, 바르셀로나, 파리로 여행을 간다. 유럽의 여성들과 달리 한국과 일본의 여성들은 남성 중심사회에 집단적으로 저항하고 도전하기 보다는 개인적 방식으로 해결책을 강구한다.
특히 교육받은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여성의 선택, 여성의 삶, 그리고 사회적 책임과 의무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지 못한다면, 여성들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비주류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남성들도 출산율 최하위와 같은 사회현상으로 인해 고통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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