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비가 오던 어느 날, 현관에 들어 서기 전에 우산을 접어 몇 번을 흔들어 빗물을 털어내고 들어가니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가 “고맙다”고 했다. 빗물이 묻은 우산을 그냥 가지고 들어가면 복도에 물이 떨어져서 청소하기에 힘이 드는데 미리 빗물을 털고 가면 그만큼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특히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방향 지시등 켜기, 교차로가 정체되었을 때는 비록 녹색신호라도 진입하지 않기 등은 법규 이전에 상식이라 할 수 있고, 주차할 때는 다른 차가 주차하거나 빠져 나오기 쉽도록 공간을 짐작하여 대는 일. 좁은 공간에서 서로 양보하며 비켜주기 등 예를 들자면 얼마든지 있겠다.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고, 분화됨에 따라 서로 배려하고 신경을 써야할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을 달궜던 지하철에서의 10대 소녀와 70대 할머니의 난투극 사건도 배려심의 부족에서 일어난 일이라 볼 수 있다. 소녀가 다리를 꼬고 앉아 흙 묻은 신이 할머니의 옷에 닿자 이를 나무라는 할머니에게 소녀는 반말로 대들고 이에 할머니가 분개하여 소녀를 폭행하는 장면이 인터넷에 올려 진 것이었다. 소녀의 신발이 다른 사람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을 하든가, 할머니가 조용히 타일렀다면 많은 승객들에게 불편을 준 그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져보았다.
며칠 전, 늦은 밤 고속버스를 탔는데, 한 승객의 MP3 소리가 크게 울리는데도 누구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말을 걸었다가 마찰이 일어날까 염려를 해서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곧 볼륨을 낮추어 다행스러웠지만 다른 승객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아쉬웠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은 러시아에서 유학을 할 때 “기숙사에서는 밤 9시가 되면 전등을 끄게 되었지만 선생님의 '작은 배려'로 늦게까지 연습을 할 수 있어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며 고마워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밤길을 걷는데 등불을 들고 가더라는 것이다. 지나던 사람이 이를 보고 “어차피 보지도 못하면서 왜 등불을 들고 다니느냐?”고 묻자 그 사람은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 그럽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지요.”
옛날 불가(佛家)에서는 스님들이 신는 짚신바닥을 성글게 삼았다고 한다. 길을 걸을 때 개미나 벌레를 조금이라도 덜 밟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배려는 사랑이고 매너이며, 또한 불편을 참아내기도 하는 것이고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배려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먼저 자신의 가슴에 따뜻함과 넉넉함을 피워내고 기쁨과 행복을 갖게 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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