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
그렇지만 약물사건, 폭행사건, 음주교통사고 등 연예인이 연루된 사건사고 처리과정에서 드러나는 대중의 반응은 반드시 일정하지 않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등의 불법행위에 대한 반응도 종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 정부에서는 위장전입이나 논문 이중게재가 고위공직 후보자의 치명적 결격사유로 작용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납득할 수 없는 병역면제 또는 고의적인 세금탈루마저도 고위 공직자의 자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결국 타블로 학력 논란에서 드러난 바와 같은 '부화뇌동'이나 '즉흥성'이 대중의 본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민주주의의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집단지성은 궁극적으로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무오류의 집단지성이 보이지 않는 손처럼 우리 사회를 이성적으로 통제하고 있는가.
성폭력범죄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격렬한 증오는 이즈음 한국사회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의 관심을 자극할 요소를 두루 갖춘 강간살인사건과 아동성폭력사건이 빈발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관심의 폭증에 상응할 정도로 성범죄사건이 증가하였다거나 그 양상이 흉포해졌다는 실증적 증거는 미미하다. 그리하여 일각에서는, 성폭력사건에 대한 관심 증대 또는 성폭력범죄에 대한 공포의 확산을 통해 정치·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키우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난 주 대전지방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지적 장애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남학생 16명을 불구속 입건한 사실이 문제되었다. 범죄가 매우 중대하고 가해 소년들의 진술이 모두 일치하는 등 혐의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 구속수사 의견을 밝히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지적은 구속을 처벌과 동일시하는 대중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구속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수사 또는 재판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피의자나 피고인의 신병을 확보하는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수사와 재판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한 가능하면 구속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권리를 더 두텁게 보호하자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겪은 참상에는 가슴이 미어지지만, 가해소년들도 우리 사회의 일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면 대중의 복수감정은 충족될지 몰라도 그것만으로 피해자의 고통이 감경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모두를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대중의 감정에 영합해 범죄자를 중벌에 처하자고 외치는 일이 아니다.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밝혀 엄정하고 공평하게 처벌함으로써 새로운 피해를 예방하고, 이미 피해를 당한 사람에 대해 생색내지 말고 조용히 보호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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