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이석 대전시립교향악단 사무국장 |
우리가 흔히 쓰는 세대 차이가 이미 오랜 과거 사회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세대 차이란 말 자체는 기성세대 보다는 젊은 세대가, 젊은 세대보다는 어린 청소년 순으로 그 쓰임의 빈도가 훨씬 많아진다.
역으로 기성세대는 “내가 저 만할 땐 저러지 않았는데…”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거나 자주 되뇐다.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사고방식의 차이, 가치 기준의 차이 등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가치관은 곧 다른 문화를 생성하는 결과를 만든다. 신세대 문화, 기성세대의 문화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중요하게도 우리는 각자가 이러한 용어의 사용자이면서도 동시에 대상자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적용에 대한 대상이 '나'에 대한 '너'가 아니라, '너'에 대한 '나'로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한 사회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각자의 가치관에 의한 판단 때문에, 자신은 마치 전혀 다른 별종의 사회 구성원인 것 같은 괴리에 빠진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성세대가 '철이야! 영희야 놀자!' 라는 공동체의 사회적 문화 형태 속에 놀이 문화가 이루어지던 세대와, 오늘날 컴퓨터나 게임팩, 스마트폰, MP3 등으로 즐기는 청소년 문화 속의 문화는 현저히 달라져 있는 것이다. 그 옛날의 개념적 '철이' 혹은 '영희'가 자기 놀이의 방해 대상으로 떠오른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관을 어른들은 어떤 형태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오늘날의 청소년의 사회적 문화 형태가 그렇게 개별적이고 자기적인 것을 전체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의 철학이나 과학에서는 “일정한 구성원체 내에서 공유되는 가치관은 다른 구성원체의 가치관과 비교되거나 적용될 수 없으며, 다른 구성체로 가면 다르게 이해되거나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곧 세대간의 구성체에 대한 가치관의 이해를 자기의 가치관 혹은 자기가 구성되어 있는 구성체의 가치관으로 다른 구성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곧 상대의 가치관속에 들어가서 판단해야만 상호 가치관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눈높이 교육처럼 단순히 눈높이를 맞추어 보는 것으로 소통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보더라도 보이는 실상의 해석적 가치관이 다르면 서로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가치관의 선 이해 속에서 같은 눈높이를 맞추어 바라보는 것이 소통의 우선적 과제인 것이다.
따라서 문화간의 세대 차이는 열린 인식의 구조로 서로의 가치관 사이에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트로트 세대와 랩댄스 뮤직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서양음악과 한국 음악에서, 대중문화와 예술문화 사이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윤리적인지 서로의 공유체 간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열린 가치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 문화간의 세대 차이라는 이질적 문화가 아닌 공유하는 진정한 문화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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