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해 5년 동안이나 도피행각을 벌인 연쇄살인범이 붙잡힌 게 다 된장찌개 때문이란다. 살인범은 사형 직전에 그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 했단다. 제보를 들은 방송사 PD 최유진은 신비로운 된장의 비밀을 지닌 여인 장혜진을 쫓는다. 하지만 혜진은 자취를 감춘 뒤다.
그럼에도 사형 직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다는 된장찌개. 여기서부턴 특별한 된장이 주인공이다. 그럼 ‘식객’류 음식 영화인가 싶은데,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목숨을 걸어도 후회 없을 만큼 맛난 된장을 빚는 여인, 그 여인의 이야기로 옮겨가면 러브스토리다.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맛있는 된장을 빌려 사랑을 말하기 위해 멀리 돌고 돌아서 도착한다. 보통 사랑이 아니다. 햇빛으로 말려 세월로 간수를 뺀 소금, 매화꽃 향기가 밴 흙으로 빚은 장독, 아기돼지가 기른 콩, 산속 깊은 곳의 옻 샘물, 매화주 누룩, 그런 정성어린 재료가 어우러지고 햇살과 바람이 빚어낸 신비로운 된장 같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중반까진 잘 짜인 미스터리 같다. 영화는 방송국 PD 최유진(류승룡)의 손을 빌어 신비로운 맛을 내는 된장의 비밀을 간직한 여인, 장혜진(이요원)을 쫓는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혜진과 그녀에 얽힌 이야기를 재구성해가는 과정은 궁금증과 긴장감의 연속이다. 혜진을 쫓아 방방곡곡을 헤매면서 알게 되는 콩, 소금, 물, 누룩, 장독 등의 에피소드들은 우리 고유의 음식에 대한 탐구로 맛깔스럽다.
유진이 혜진을 기다리는 남자, 김현수(이동욱)를 만나는 순간, 영화는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을 꺼내놓는다.
전국을 돌며 우리나라 사계절을 담아낸 영상이 눈부시다. 이서군 감독은 “맛이란, 실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된장찌개 맛에 홀린 연쇄살인마가 경찰에 붙잡히는 장면은 눈발이 흩날리는 유려한 영상으로 신비로운 된장 맛을 표현한다. 똑같이 흩날리는 장면이지만 혜진과 현수가 처음 만났을 때 흩날리는 꽃잎은 운명적인 사랑의 징표로 여겨질 만큼 아름답다. 색채도 분위기도 다른 이 장면은 된장과 사랑의 어울림 속에서 묘하게 겹쳐진다.
된장의 진실과 그 안에 담긴 러브스토리는 감성을 자극하고, 다양한 장르를 변주하면서도 이야기를 깔끔하게 풀어낸 솜씨는 탁월하다.
기획, 제작, 각본에 이름을 올린 장진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 중 가장 오랜 시간과 공력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했다. 시나리오뿐 아니라 연출과 촬영에서도 꽤 공을 들였다. 사랑을 말하는 데 이처럼 어려운 방식을 택한 이유는 뭘까. 이서군 감독은 “보통 생각하는 아주 오래된 전통의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젊고 동화적이면서 다채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 삶 속에서 된장처럼 초라하고 소박해 보이는 것들이 꼭 그래야 하는가. 정말 소중하고 마법 같고 풍성한 이야기로 만들어질 순 없을까,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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