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양촌면에 사는 김영학(77) 할아버지.
죽은 줄로만 생각했던 형(81ㆍ영석)이 이산가족 상봉 시 만남을 원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은 뒤 꿈인 줄 알고 한동안 머리가 띵했다”며 “헤어진 지 60년, 전쟁 통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의 얼굴을 볼 수 있다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잠시 60년 전을 회고하는 듯 눈 감고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김 할아버지가 형과 이별한 것은 한국전쟁 발발 뒤 한 달여 만인 1950년 7월.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북한군은 김 할아버지 고향까지 점령했다.
이어 북한군은 무차별적인 징용을 시작했다.
김 할아버지는 “한 집에 아들 3명 이상 있는 집에서 한 명씩 데리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북한군 손에 붙들려 형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한으로 남아 있다”며 울먹였다.
당시 형의 나이는 21살, 김 할아버지는 17살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이별을 한 뒤 강산이 6번이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김 할아버지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특히 형제들을 위하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 깊었다”며 형을 회상한 뒤 “60년 동안 한 시라도 가슴 속에서 형을 지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험한 전쟁 통에 죽은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줘서 동생을 찾아주니 너무나 고맙다”며 형에 대한 애달픈 심정을 마음을 쏟아냈다.
곁에 있던 부인 송월선(70) 할머니는 “결혼한 지 50년이 됐는데 그동안 남편이 형을 생각하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며 “시 아주버님을 처음 뵙는 데 꽃 단장이라도 해야겠다”며 남편을 위로했다.
김 할아버지는 오는 30일부터 금강산에서 시작되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29일 고향에서 출발한다.
이번 상봉에는 부인과 조카 등 5명이 올라간다.
그는 “60년 동안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형수님은 어떤 분일지 조카들은 몇이나 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며 “형님을 뵙는 데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선물을 사려 하는 데 무엇이 좋겠냐?”라며 아이처럼 설레는 심정을 내비쳤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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