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프로야구를 봐서는 아니지만 타이밍 맞추기, 타이밍에 맞게 입고 벗기를 잘하기가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내 경우도 구리모토 신이치의 '팬티를 입은 원숭이'같이 돈이라는 이름의 팬티를 그냥 걸치고 살았으면 인생의 색깔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섹스라는, 노이로제라는, 법률과 도덕이라는 팬티는 다 입고 왜 그 팬티만 벗어던졌던가.
일말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경제학은 '돈이라는 팬티를 입은 인간에 대한 연구'라는 나만의 정의를 내려본다. 다시 그 팬티를 걸치고, '돈'은 고상하게 '화폐'나 '자본'으로 부르고자 한다. 창고가 가득 차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고 관자가 그랬고, 예수도 '빵만으로' 살 수 없다 했지 빵 필요 없다고는 안 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안정돼야 민심도 표심도 안 변한다. 이걸 알아야 한다.
아는 것과 똑똑한 것, 버는 것은 물론 별개다. 고전학파-케인즈학파의 그 케인즈도 주식 투자로 거덜 날 뻔했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블랙-숄즈 모델의 숄즈의 펀드도 파산 직전에 직면했었다. 차트를 공부하고 기업 재무재표를 죽어라 분석해서 주식 잘하는 건 아니다. 원숭이, 아마추어, 펀드매니저의 수익률 게임에서는 랜덤워크 이론에서처럼 원숭이가 1등, 펀드매니저가 꼴찌일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돈이라는 팬티를 에잇 하고 던지지 말라는 구리모토 선생의 충고를 늦게나마 정중히 접수한다. 어디선가 “오직 팬티만” 입으라는 극단적인 충고도 들려온다. 조직과 개인 모두 몸을 가볍게 하라는 '슬림'의 강조다. 할 수 있다면 누군들 힘센 동물들과 사귀고 제인과 동거하는 타잔이 되어 충직한 치타를 두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돈이 민주주의다'라는(아니면 러셀 식으로, '시기심'이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극단은 피하면서, 구린 탐욕으로 튜닝된 팬티가 아니라면 미련하게 팬티를 함부로 벗어던지는 '재물 파괴'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제 알몸 부끄러움을 몰라야 수치이지 팬티 속 욕망 자체가 불량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다니!
정신을 차리고도 여전히 통설 같은 경기지수에 더 끌린다. 경기가 나쁘면 오히려 데이트 남녀가 늘고(데이트 지수), 웨이트리스가 화끈해진다(핫 웨이트리스 지수). 남성 팬티 판매는 줄어든다(속옷 지수). 경제 회복의 신호탄인지 미국에서 남성 팬티가 팔리기 시작한다는 소식이다. 구리모토의 팬티는 아니지만 일단 '희망적'이라 좋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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