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일]진경이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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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일]진경이의 소망

[교육단상]서상일 천안서여중 교감

  • 승인 2010-10-19 14:22
  • 신문게재 2010-10-20 20면
  • 서상일 천안서여중 교감서상일 천안서여중 교감
3학년에 다니는 진경이가 '근모근육종'이라는 희귀질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날씨가 유난히도 화창한 오월의 '어버이날'이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열린 체육대회가 끝날 무렵 왼쪽 가슴에 통증을 느껴 학교 옆에 있는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온 몸에 종양이 번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담임선생님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 서상일 천안서여중 교감
▲ 서상일 천안서여중 교감
육안으로 보아도 한 쪽 가슴이 볼록 튀어나올 정도로 병반이 번져 있었지만 한창 민감한 사춘기인데다 평소 말수가 적었던지라 부모님께 아픈 내색을 하지 않고 참아왔던 모양이었다. 설상가상 부모님의 사업실패로 병원비를 감당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딱한 처지였다.

그 날부터 진경이의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이 모여 돌아앉아 눈물 짓는 날이 많아졌다. 학생들이 자치회의를 통하여 모금을 하기로 결정했다. 교사들은 물론 조리종사원들과 행정실 직원들도 모금활동에 동참했다. 가정통신문을 통하여 각 학부모님들께도 도움을 요청했다. 병설학교인 천안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도 소식을 전해 듣고 십시일반 성금을 보내주었다. 충남교육청에서 지원받은 200만원을 포함하여 약 1500만원의 성금이 걷혔다.

쾌유를 기원하는 주변 사람들의 정성이 통하기라도 한 것일까? 병세가 워낙 중하여 수술은 할 수 없었던 터라 중환자실에서 약물치료와 방사선 치료만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일반실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병실 너머로 지척에 보이는 교실과 친구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어느 날은 학교 급식이 먹고 싶다고 해 담임선생님이 음식을 포장해 배달하기도 했다. 병세가 호전된다는 희망 어린 소식과 더 나빠졌다는 절망적인 소식이 교차되어 들려오는 가운데 그저 모두 하루 빨리 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석 연휴가 막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녀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간절히 쾌유를 기원했건만 정성이 부족했던 탓이었을까? 그녀는 낙엽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 어귀에서 부모님의 눈물겨운 소망을 저버리고 이팔청춘 짧은 생을 한 줌 재로 마감한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은 부모를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딸을 먼저 떠나보낸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진경이의 부모님이 학교를 방문하신 것은 3일간의 장례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선후 절차를 설명할 여유도 없이 진경이 아버지가 품속에서 한 장의 봉투를 꺼내셨다.

“생전의 진경이의 뜻이에요. 자기보다 어려운 친구들을 꼭 도와주라고….”

봉투 안에는 백만 원의 돈이 들어 있었다. '더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라니….' 차 한 잔 마실 마음의 여유도 없이 돌아앉아 눈물 감추는 두 분 내외의 모습을 보며 짧은 순간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병실 너머로 지척에 보이는 학교를 떠올리며 숨을 거두는 순간의 고통 속에서도 더 어려운 친구를 생각했을 진경이, 그녀를 돕기 위해 성금을 기탁했던 많은 분들, 그리고 그녀의 유언을 지켜주기 위해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학교부터 찾아오신 그녀의 부모님까지, 이런 마음들이 모여 각박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가는 활력소가 되는 것임을….

떠나는 순간 병실 너머로 지척에 보이는 교실과 친구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못다 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 것이며, 하고 싶은 일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나라에서 자기보다 더 어려운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을 진경이를 생각하며,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그녀가 남기고 간 장학금이 그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사용되어 오래 기억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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