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5년간 ‘심야의 영화음악실’을 진행해온 DJ 고선영. 딸의 수술을 위해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마지막 방송을 하는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청취자 동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이 시키는 대로 방송하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것. 마지막 방송은 악몽으로 변해간다.
‘심야의 FM’은 5년 동안 ‘심야의 영화음악실’을 진행해왔지만 이제 마이크를 놓으려는 DJ 고선영과 그녀의 은퇴를 용납하지 못하는 스토커 한동수의 대결을 그린다. 동수는 광기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그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는 싱글맘 선영의 처절한 분투기다.
영화의 재미는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살인을 막아야 한다는 설정에 있다. 방송은 도중에 멈출 수 없고, 살인마에게 붙잡힌 가족을 구해야 하는 주인공의 절박한 상황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게다가 두 시간 남짓한 영화의 러닝타임이 영화 속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그만큼 이야기는 처음부터 속도를 내고, 2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면서 긴장과 긴박감을 증폭시킨다.
제한된 시간, 힘의 주도권을 쥔 자가 제시하는 불공정한 게임,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사건, 게다가 그녀가 구하려는 가족은 말을 못하는 아이다. 영화는 이처럼 스릴러 영화에서 활용 가능한 긴장의 공식을 정직하게 활용하며 긴장감을 높여간다. 열혈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노린다거나 생방송 도중 위험에 처하는 설정은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 하지만 빠른 장면 전환, 수애와 유지태의 안정된 연기 등에 힘입어 가슴 졸이는 긴장을 거의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단아하고 외유내강의 이미지로 각인된 수애는 차갑고 도도하면서 모성애가 충만한 연기를 제법 맛깔나게 해냈다. 실제 라디오 DJ 이상으로 매력적인 저음의 목소리가 캐릭터와 썩 잘 어울리고 또 가족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는 이전엔 볼 수 없었던 강인한 매력도 뿜어낸다.
동수로 분한 유지태에게선 ‘올드보이’의 이우진이 오버랩된다. 책임 없이 내던진 말에 대한 단죄,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살인자의 숨겨진 사정과 같은 구조가 ‘올드보이’를 연상시키고, 그러니 유지태의 동수에게서 이우진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날 선 칼 같은 특유의 서늘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동수가 선영의 방송을 들으며 연쇄살인범이 되는 과정은 디테일이 부족하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몇 번의 위기마다 선영의 조력자가 정시에 그녀 앞에 등장하는 것도 그렇다. 영화 후반 스릴러의 숨 막히는 분위기를 잃어버리고 활극으로 치닫는 것도 생뚱맞다.
그럼에도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것은 김상만 감독의 우직한 연출력 덕분이다. 설득력은 떨어져도 내러티브는 막힘없이 연결되고 액션의 활력을 이끌어내는 연출의 리듬감 역시 괜찮다. 심야의 도심을 질주하는 추격장면은 ‘해결사’ 못지않은 박진감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탁월한 건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지점의 광기를 포착해낸 데 있다.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피 묻은 몽둥이를 든 동수가 아니라, 그걸 취재하려는 기자의 미소 띤 표정과 살인 중계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에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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