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시대적 배경은 명나라. 800년 전 사라진 라마의 유해를 차지하기 위해 강호가 들썩인다. 유해의 반쪽을 맡고 있다가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하던 지앙은 유연히 알게 된 비단장수 정징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둘은 행복은 암살단 흑석파의 출연으로 위기를 맞는다.
국내 관객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정우성이 과연 잘 해냈을까’하는 거다. 중국어 대사는 어눌하진 않을지, 중화권 배우들과 어우러짐은 괜찮을지. 결론부터 말하면, 썩 잘 해냈다. 정우성은 지앙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특유의 장점인 눈빛연기는 존재감을 뚜렷이 새긴다.
오랜만에 무협지의 세계에 푹 빠졌다. 무협지(武俠誌), 그 소설의 세계엔 나름의 틀이 있다. 절세무공을 제공하는 무경(武經), 진보(珍寶)가 있고 이를 차지하기 위한 선과 악의 암투가 있다. 숨어있는 고수가 있고, 대개 주인공은 무공을 전혀 모르는 순박한 청년이다. ‘검호강우’엔 이런 무협지의 엑기스가 죄다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어지는 연검, 단검, 쌍검에 마술, 독침 등 다양한 무기를 동원한 무술 대결은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부하지만 컴퓨터그래픽으로 범벅하지 않는다. 중후하다. CG로 그려진 군대와 군중이 등장하지 않는 무협영화를 보는 게 과연 얼마 만인지. 특히 원색을 강조하는 가운데 은은한 실내조명 아래 도드라지는 인물들의 복식과 표정은 과거 ‘외팔이’ 시리즈 시대의 고전 무협의 향취가 물씬하다. 간결하고 담백하며 유려하고 우아하다.
액션신 자체가 주는 쾌감 못지않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러티브도 탄탄하다. 칼과 칼이 부딪는 날카로운 소리가 시종 객석을 울리지만 정작 영화는 로맨스에 방점을 찍는다. 기자의 식견이 짧은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양쯔충(楊紫瓊)이 설레는 마음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영화는 처음 본다. 양쯔충이 “이제 나도 사랑을 해도 될까” 고민하고 정우성이 “정말 괜찮은 사람일까” 여러 번 시험에 들게 하며 지켜보는 모습은 관객의 마음까지 흔든다. 결혼하고 나서 그녀는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물론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혈이 눌려 몸이 마비돼 거동이 불가능한데도 기어이 비틀비틀 일어나고야 마는 정우성의 짠한 모습도 가슴을 친다.
우위썬이 제작을 맡았으니 그의 입김이 작용했겠지만 ‘검우강호’의 성취는 오롯이 연출을 맡은 수차오핑 감독의 것이다. 젊어서 무협지에 빠져 지낸 영화광인 이 신인 감독은 우위썬의 ‘페이스 오프’를 비롯한 전작들, 또 ‘와호장룡’과 그보다 훨씬 이전의 중국 고전 무협영화들을 끌어다 쓰지만, 끌어 쓴다기보다 자유롭게 오가며 자기만의 영화를 완성해냈다. 볼거리와 이야기 사이의 세련된 균형감은 그가 가진 무시하지 못할 내공을 보여준다.
우위썬과 정우성의 뒤늦은 만남이 앞으로 그들의 영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는 ‘검우강호’만으로는 점치기 어렵다. 다만 고전 무협영화의 팬이라면 매 장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독특하지만 과도하지 않은 스타일, 중후한 멋이 넘치는 액션신 등 최근 몇 년간 만들어진 중국 무협영화 중 가장 세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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