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희 대전둔천초등학교장 |
우리는 흔히 '자유'가 그리울 때 여행을 떠나곤 한다. 풍선초처럼 열매도 내려놓고 가벼워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부지런히 시간을 체크하면서 버스에 오르내린다. 여행이 또 다른 구속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다.
여행에서 얻고 싶은 것으로 새싹 같은 에너지도 꼽아본다. 새로운 에너지와 만남은 행운이지만, 내 경우에는 피로가 더 커서 기대하기 어려운 과제에 해당된다. 떠날 때의 꿈이 돌아올 때 많이 포개어지는 장소를 찾아서 의견도 분분하지만, 개인의 기호로 인해 머리만 크고 꼬리가 작아지는 것도 여행의 일면이다.
오래 전에 유럽을 갔을 때 일이다. 알프스 산에서 흘러내리는 옥색 물빛이 예뻐서 발을 담가보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만난 우리나라의 야트막한 야산과 시냇물이 어찌나 정겨운지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유럽의 돌 문화에서는 그 무게만큼이나 중후하고 거대한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그들의 후손은 대대로 유산을 물려받고 있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윤택한 그들의 문화 한가운데 서서 문득 우리나라의 나무문화가 그리워졌다. 묵직한 돌 문화에서는 어떤 신의 계시가 느껴지는가 하면, 가볍고 부드러운 나무문화에서는 인간적인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작지만 섬세하고 은은한 명상의 문화가 우리의 것이라는 결론을 보듬은 것이다.
퇴직한 어느 선배의 사진 작품에서는 우리나라 곳곳이 보석으로 반짝이고 있어서 보물찾기에 나서고 싶어지기도 한다. 우리 것에는 추억이 있고 정이 있어 가는 곳마다 쉼터가 되지만, 다른 나라는 아무리 좋아도 달력 속의 풍경으로 머물고 말기 때문에 학습이나 비즈니스가 목적이 아니라면 내가 사는 곳부터 둘러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공항에 길게 줄을 선 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우리에게 여행이란 대개 어릴 적 소풍으로 출발한다. 설렘은 늘 미리 다가와서,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하늘을 몇 번이나 올려다보게 한다. 소풍날에는 먼 길을 걷는 것이 다소 힘들지만, 일 년 중 유일하게 먹는 김밥이랑 보물찾기로 폴짝폴짝 뛰어노는 아기염소들처럼 즐거웠다.
그런데 지금은 '소풍'이란 말이 사라지면서, 대신에 '현장체험학습'이란 이름으로 우리 아이들을 하루 종일 버스에 오르내리게 한다. 동심의 설렘은 예나 지금이나 같겠지만 왠지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은 아쉬움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비어가는 마음에 얼마나 질 좋은 에너지를 채우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김밥을 싸 들고 단풍이 좋은 곳으로 소풍이나 가 볼까? 가을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계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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