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가옥, 의복과 말의 억양 등은 지역의 특징을 문화로서 반영한다. 쉽게 간과해서는 아쉬운 우리의 자산이며, 문화유산이다. 지방마다 다른 식재료와 향신료의 사용은 먹을거리 문화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었다. 비빔밥도 전주와 진주가 다르고, 추어탕도 남원과 청도가 달라진다. 돼지국밥과 소머리국밥의 향수는 지역의 문화 역사와 밀접한 관계에서 파악된다. 지금은 기성복을 입고 있어 의복의 다양성은 사라져 가고 있으나, 말투며 어휘와 억양은 여전히 문화적 다양성의 대표적 자산이다. 부산 지역어를 빼놓고 영화, '친구'를 생각하기 어렵다. 지역의 문화는 그 자체로서 자산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예술의 다양성은 문화유산으로서, 민족적 자산으로서 긍정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걸핏하면 부정적 개념의 지역주의나 지방색으로 연결되곤 한다. 철마다 들려오는 해묵은 불평에 우리는 당쟁과 내분의 슬픈 역사를 떠올리곤 한다. 아니, 현재에도 번연히 벌어지는 지역 갈등과 폄하의 인식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암과 같은 부정적 요소라 규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건드려서는 곤란한 뇌관이라도 되는 듯이 지역과 지방의 '다름'을 '그릇됨'이나 '열등함'으로 억지를 부리는 '차별성'이라는 결과에 방관적이다.
국가 대항 스포츠를 관전하면서 자신의 지역 출신을 따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독도문제를 출신 지역에 따라 달리 생각할 리 만무하다. 2002년과 2006년, 그리고 2010년 월드컵을 관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외쳤는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을 만큼 그 열기는 뜨거웠고, 우리는 과연 하나였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분명 아니다. 남과 북이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하나 됨'을 체험하려는 크고 작은 시도와 행사들 또한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살고 있는 조총련과 민단이 공동행사와 활동을 시도하는 빈도수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보면서 지방색을 운운하는 경우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지역의 경쟁 구도와 차별주의는 정치적인 지방색이라는 전대미문의 괴이하고 정체불명한 문화현상을 만들었고, 그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정치현장을 통해 매번의 선거를 통해 확인되곤 한다. 물론, 그 피해는 갈등의 구도를 이용하는 극소수를 제외하곤, 고스란히 우리들 모두의 몫이다.
제주도의 올레 길과 지리산의 둘레 길을 걸으며 만나는 동네와 그 사람들이 드러내는 다양한 정서와 문화는 그 모두가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문화요, 예술의 흔적들이다. 지역주의와 지방색을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마다 지닌 특수성과 색깔을 드러내고 뽐낼 수 있는 지역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보편성과 보편주의를 주장하며, 획일화의 굴레에서 개인과 지역의 개성을 앗아간다고 해서 추세로서의 글로벌리즘을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으로서 로컬을 살리는 글로컬리즘이라는 시각에서 전체의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개인과 지역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문화예술의 지역별 특성과 개성을 살리고 드러내는 지형도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세계화의 표준으로서 제시된 모델을 무조건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은 개인으로서 '나'와 '지역'을 방치하는 자칫 위험할 수 있는 태도다.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도 전체의 조화를 꿈꾸는 안정적인 사회는 지역색과 지방색을 들추고 지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이 지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찾아가는 '지역 문화예술 지형도 만들기'를 통해 가능하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사이에 두고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할 일이다. 비빔밥에 올리는 고명의 다양성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대상이 아니라, 다양한 기호를 채워줄 수 있는 풍부함인 것이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구분하지 않으려는 어리석음은 일부 인사들의 몫일 뿐, 대한민국 선남선녀의 몫은 결코 아니다. <끝>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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