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근익 대한건축사협회 대전건축사회장 |
그러나 전문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총체적 건설능력을 초과하는 무리한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사회, 경제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국민 1인당 시멘트소비량 등 당시의 각종 지표는 기네스북에 오르는 등 지금도 건설업계에서는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당시 분당에서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던 선배가 한 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TV에서 건설현장 사고소식만 들리면 가슴이 철렁하다. 내가 시공했던 아파트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그러고 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갈 수만 있으면 외국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
바다모래와 중국산 시멘트로 대표되는 부실자재 사용과 무리한 공기단축의 결과 현장소장조차도 품질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까지 큰 사고가 없었으니 이제 그 선배는 불면의 밤이 끝났을까. 건설산업기본법상의 하자담보책임기간이 공종별로 최장 10년이니 법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건축설계, 감리업계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행법상 건축법에 의한 감리는 법적으로 설계자와 감리자가 분리돼 있지 않아 설계자가 감리업무를 겸하고 있다. 사용검사(준공검사)는 설계, 감리자가 아닌 다른 건축사가 수행하고 있다. 이는 본인이 설계하고 감리한 건축물을 본인이 검사해야하는 불합리성을 배제하고 사용검사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건축에서의 사용검사라 함은 허가된 대로 적법하게 시공됐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검사하는 과정으로서 그에 따른 의무와 권한은 원칙적으로 허가권자에게 있으나 건축법에 의해 위임받은 등록건축사가 그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사용검사업무대행자는 국가기관으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철저하게 수행할 의무를 지니며 사용검사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은 공무원과 동일한 공인으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 감리자 및 사용검사업무대행 건축사는 민·형사상의 책임은 물론 건축사법에 따라 행정처분을 받도록 돼있다.
그러나 건축사법 상의 건축사행정처분 조항에는 심각한 두 가지 문제가 내재돼 있다.
첫째는 본인의 의지나 관리영역 밖에서 이뤄진 사항에 관한 행정처분의 가능성이다. 처벌이란 본인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잘못에 대해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용검사를 필한 건축물의 관리와 불법적인 개조 등은 건축사의 손을 떠난 것으로서 건축사가 관리감독할 의무나 권한이 없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불법개조나 증축 등으로 인한 행정처분으로부터 감리자와 사용검사업무대행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징계권자가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사가 적법함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대단히 불합리하다.
둘째는 처분에 시효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범죄에 공소시효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내란죄 조차도 25년의 공소시효가 지나면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건축사의 행정처분엔 이마저도 적용하고 있지 않다. '내가 먼저 죽든지, 건축물을 철거하든지' 하기 전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한 건축사법 개정안이 2009년 5월 민주당 김성순 의원에 의해 발의된 상태이나 아직 전문위원 검토조차 끝내지 못한 상태다. 검사가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해야하 듯 징계권자가 유죄를 입증하기 전에는 당연히 무죄여야 한다. 공소시효도 없는 노비문서와 같은 건축사법의 독소조항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건축사는 늘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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