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원 전 대전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한학자 |
1443년 12월 세종대왕께서 창작하신 훈민정음이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곧 말살정책에 시달렸다. 연산군 때 양재칠서(良才漆書) 사건이 그 발단이었다. 지금의 양재동 지역인 당시 양재역(驛)의 벽에 '임금(연산군)의 모친은 천인(賤人)'이라는 내용의 벽보가 나붙었다. 한글로 쓰여진 것이었다. 이후 연산군은 한글을 언문(諺文)이라고 하면서 쓰지도 읽지도 못하게 했다. 훈민정음 책도 불살라 버렸다.
그후 120년이 지나 최세진이 한글을 복원하면서 '가 갸 거 겨…'로 순서를 바꿨다. 이는 한시(漢詩)을 지을 때 쓰는 대련법(對聯法), 즉 대구법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본래 한글 순서는 ‘ 、 으 이 오 아 우 어 요 야 유 여’가 맞다. 이는 『동국정운(東國正韻)』에도 사례가 보인다. 정인지의 『제자해(制字解)』에 보면 '천지의 도(道)는 하나의 음양과 오행일 따름(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중성(中聲)인 모음을 '하도(河圖)'에서 따온 것을 뒷받침해준다. 정인지는 또 '곤복(坤復) 사이에는 동정(動靜)이 되고 동정 후에는 음양(陰陽)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초발성(初發聲)인 자음(子音)이 '낙서(書)'에서 나온 것임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초발성인 자음이 발달되어 '성언호간(聲言乎艮)'이라 하고, 영어는 중성인 모음(母音)이 발달되어 '열언호태(說言乎兌)'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말은 우리나라가 위치한 방향을 뜻하는 '간방(艮方)' 즉 동북방에서 소리가 이뤄졌다는 뜻이고, 영어는 태방(兌方) 즉 서쪽(유럽)에서 기뻐한다는 뜻이다.
요즘 한글을 배울 때 쓰는 '가 갸 거 겨 고 교…'는 한글의 창제 원리와는 무관한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한시(漢詩)를 지을 때 쓰는 대련운(對聯韻)에 맞춘 것이므로, 백성들이 한자(漢字)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뜻과도 어긋난다.
혹자는 한글 창제의 원리로 삼은 하도와 낙서가 중국에서 온 것이므로 ‘ 、 으 이 오 아…’순으로 해도 결국은 중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가 않다. 하도 낙서는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이 만들었다. 즉 주역(周易)도 태극과 함께 동이족인 복희씨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주역이나 하도 낙서를 제자 원리의 근간으로 삼는 것은 중국과는 관련 없는 것이다. 태극기가 주역 8괘에서 따왔으나 중국 것이라고 말해선 안 되는 것과 같다.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가 갸 거 겨…'로 읽는 것을 볼 때마다 “저게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아쉬운 마음이 그지없다. 그제 564주년 한글날을 보냈다. 세종대왕께서 만들어 주신 한글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쓰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과거에도 한글은 암클이니, 아녀자 글이니 하는 푸대접을 받았다. '가 갸 거 겨…'로 순서가 뒤바뀌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 순서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니 한글은 제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겠다. 영어가 판치는 세상이 되면서 한글을 소홀히 대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한글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행히도 한글은 온 인류의 통신수단이 되어 가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에선 세계의 어떤 문자보다도 경쟁력이 높다는 점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말은 있으나 글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이 우리 글자를 빌려다 쓰는 것을 봐도 한글의 편리성과 경쟁력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위대한 유산을 물려준 세종대왕에게 거듭 고개가 숙여진다. 한글을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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