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 즉위식 직전, 즉위식에 맞춰 조성되고 있는 거대 불탑의 비밀에 얽혀 신하 두 사람이 불에 타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불은 그들 몸속에서 일어났다. 여황제는 명민한 수사관 적인걸을 불러 이 기이한 사건의 수사를 맡긴다.
'천녀유혼' '동방불패' '영웅본색'의 포스터에 정소동 오우삼 같은 걸출한 감독을 제치고, “내가 제작했소”라고 가장 큰 글씨로 외쳤던 이름, 서극(徐克). 당시 그의 이름은 홍콩영화의 품질과 재미를 담보하는 보증수표였었다. 지금으로 치면 할리우드의 제리 브룩하이머쯤 되겠는데, 나으면 낫지 덜하진 않았다.
서극. 홍콩영화 황금시대를 이끈 감독 겸 제작자. 1983년 '촉산'(2001년 자신이 직접 '촉산전'으로 리메이크했다)에서 동양적 SF를 구현해 '아시아의 스필버그'로 불렸고, '최가박당' '천녀유혼' '영웅본색' '황비홍' 등 놀라운 상상력과 시각적 신선함으로 히트작을 양산하며 홍콩영화의 지평을 넓혔던 주인공이다.
그의 영화 철학은 명료하다.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 그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할리우드로 갔지만 환영받지 못했고 다시 돌아와 홍콩에 정착한 지금, 그의 이름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은 그가 '칠검'을 내놓은 지 5년 만에 다시 무협의 세계로 돌아온 작품이다.
'적인걸…'은 서극의 다양한 경력을 엿보게 한다. 무협을 기본으로 한 번 이상은 다뤄봤던 요괴, SF, 추리, 어드벤처, 팩션(가공된 역사물) 등 다양한 소재를 망라하면서 능숙하게, 매우 야심차게 아우르며 비상한 장면들을 빚어낸다. 꽤 잘 만들어진 오락물이다.
적인걸(狄仁傑)은 당태종 정관 4년(630년)에 태어나 무측천 구시 원년(700년)에 죽은 실존인물이다. 당 초기의 뛰어난 정치가로 측천무후로부터 '국로(國老)' 칭호를 들었다. 포청천 못지않게 사건 해결에 놀라운 능력을 보여 민담의 주인공으로 중국인들에겐 아주 친숙한 인물. 영화는 적인걸이 측천무후 시대 재상 반열이 오른 사실을 배경으로, 그 과정에 사람의 몸이 저절로 타버리는, '인체자연발화'라는 기이한 현상을 수사하는 탐정 스토리를 풀어놓는다.
추리극 뼈대에 액션의 살을 입힌 영화지만 서극의 공력이 느껴지는 건 역시 액션이다. 적인걸 일행이 사건조사를 위해 지하세계인 귀도시로 내려갔을 때 그들은 물에서 솟구쳐 나와 허공을 뚫고 올라가는 통나무들 사이로 물길과 뱃머리를 뛰어다니며 '보자기 괴물'과 싸운다.
허공을 가르는 보자기 무술은 '촉산'의 그것을 연상시키는데,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만큼 극적이고 현란하다. 그리고 마침내 측천무후를 닮은 거대한 대불(大佛). 적인걸은 그 머리끝에서 수직 하강으로 떨어지면서 마지막 활극의 쾌감을 선사한다.
귀도시에서 무극관으로 다시 대불로 이어지는 액션신은 그 장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 가쁘다. 공간과 어우러지는 아기자기한 대결장면에서 재치 있게 합을 짜는 무술감독 홍금보의 진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고, 이를 CG를 곁들여 아름답다고 느낄 만큼 현란하게 뽑아낸 화면에선 서극의 공력이 진하게 느껴진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진출작. 이 영화의 CG는 우리나라 에이지 웍스의 작업이다./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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