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와 빈곤의 땅... 절망을 치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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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빈곤의 땅... 절망을 치유하다

<을지대 산부인과 김기환 교수 '몽골에서 온 편지'> 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김기환 교수

  • 승인 2010-10-06 14:19
  • 신문게재 2010-10-07 11면
  • 김민영 기자김민영 기자
밤에 도착한 몽골 칭기즈칸 공항의 첫 느낌은 우리나라의 시골 기차역 같다는 느낌입니다. 외모나 피부색도 거의 비슷한 시골 아주머니 아저씨 같은 느낌의 몽골사람들.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공항에서부터 너무 낙후되어 있다는 생각이 심하게 드네요. 공항 밖으로 나오니 우리나라의 쌀쌀한 날씨와 울란바타르 대학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약 40분 정도 열악한 도로를 실감하며 어느덧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몇 번이고 잠을 설치게 했던 새벽의 추운 기억과 함께 몽골의 첫 아침을 맞았습니다. 가장 먼저 하늘을 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스텔 톤의 파란 하늘, ‘과연 내가 이런 하늘을 한국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유명한 몽골의 하늘답게 눈이 부시네요.

울란바타르대학에 모여 일주일간 몽골의료봉사의 각오를 다지며 출정식을 거행했습니다. 대전을지대학병원, 노원을지병원 의료진, 대전과 성남의 을지대학교 학생 그리고 통역을 위해 수고해주실 울란바타르대학 학생들. 이렇게 모두 한자리에 모이니 든든한 생각과 함께, 앞으로 일주일간의 낯선 곳에서 생활습관과 언어가 전혀 생소한 분들을 진료한다는 생각에 설레임과 두려움이 서로 마구 뒤섞이네요.

사실 의료봉사에 산부인과가 필요한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과연 환자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엄청나게 많은 환자들이 몰리기 시작합니다. 몽골 특히 빈민가나 혹은 유목생활을 하는 분들의 다산(多産)의 풍습 때문에 예전부터 부인과 염증성 질환이 많았다고 합니다. 피임, 부인과 염증성질환 및 성병에 대한 예방교육이 부족한 관계로 아주 많은 분들이 고생을 하시는 모양입니다.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 중 90% 이상이 부인과 염증성질환입니다. 이중에서도 실제 성병이 의심되는 증상 보다는 평소 관리부족으로 인한 세균성 질염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엘덴솜 지역에서는 아주 다양한 분들을 진료했으며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50대 정도의 아주머니 한 분이 초음파 검사를 원해서 오셨는데 좌측 외음부에 달걀만한 물주머니가 보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음부의 바톨린선이라는 분비샘에 염증이 생기면서 여드름처럼 입구가 막히고 안에 고름이 차는 낭종입니다. 통증이 있기는 한데 이분은 치료를 받아야하는 병변이라는 것도 모르고 계십니다.

현지의 조산사분도 이게 뭔지 어떻게 치료해야하는지 전혀 정보가 없네요. 간단한 국소 마취를 하고 절개 후 배농을 하니 고름덩어리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합니다. 미리 예상은 했지만 쏟아져 나오는 고름덩어리들에 옷을 다 버렸네요. 현지 분들은 제가 불편해 할까봐 환자 보다는 제 옷을 닦아주는데 더 신경을 쓰네요. 저한테 신경을 쓰지 않게 하면서 앞으로도 이런 분을 볼 가능성이 크니 치료 방법과 예방방법을 알려드렸는데 그 와중에도 이분은 제 옷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눈치입니다.

잠시 후에 임신 24주 정도의 임산부께서 초음파 검사를 원하셔서 오셨습니다. 한 번도 초음파를 본적이 없으시다네요. 천천히 태아의 발육상태를 확인하면서 일부러 모니터를 돌려 태아의 얼굴과 손가락 등을 보여주고 태아의 심장 박동소리도 들려 드렸습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진료과정이고 익숙한 내용입니다만 이분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처음 보는 아이의 얼굴과 손가락이 마냥 신기하고 기쁜 모양입니다. 점점 얼굴이 환해지더니 얼굴을 보는 순간 살며시 환호와 비슷한 감탄사가 나옵니다. 현지어라 당시엔 못 알아들었는데 나중에 통역을 하는 학생이 ‘정말 고맙습니다’ 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다시 천천히 초음파를 보는 도중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이 듭니다. 태반이 산도 입구를 완전히 막고 있는 전치태반입니다. 정도를 보니 분만 시까지 계속 지속될 완전 전치태반입니다.

무조건 수술을 해서 분만해야지 모르고 자연분만을 시도했다간 과다 출혈로 인해 산모 및 태아 모두 위험할 가능성이 100%입니다.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에 차마 말을 못하고 조용히 조산사분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향후 관리를 부탁드렸습니다. 초음파만 한번 확인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인데 만일 확인하지 못하고 진통이 왔더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무사히 예쁜 아기를 분만하시길....’

한참 늦게 진료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그 사이 다른 과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린 아이가 끓는 물에 화상을 입고 급하게 온 모양입니다. 양팔과 다리 그리고 몸에 약 30%가 넘는 범위의 2~3도 화상, 듣기만 해도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초기 처치가 중요하므로 부족한 모든 물과 소독된 거즈, 그리고 항생제 연고가 부족해 조그만 튜브로 가져온 항생제 연고를 수 십개씩 짜서 겨우겨우 응급처치를 마치고 울란바타르로 후송을 한 모양입니다.

다른 교수님들도 땀을 닦으시며 한숨을 돌리고 계시네요. 정도가 심각해 분명 어느 정도의 장애가 남을 텐데. 그나마 우리라도 여기에 있지 않았다면 2시간 넘게 응급치료도 못하고 고통에 시달리면서 이동을 했을 거란 생각에 모두 할 말을 잃고 아이가 큰 합병증 없이 무사히 완쾌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모두 마치고 가져온 장비를 정리한 후 무사히 모든 봉사일정이 마무리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나니 엄청난 피로가 몰려오네요. 생각해 보면 지난 4일간 거의 휴식도 없이, 중간 중간에 겨우 허기만 모면한 체 모두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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