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배추를 둘러싼 이해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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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배추를 둘러싼 이해와 오해

  • 승인 2010-10-06 12:04
  • 신문게재 2010-10-07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통배추의 배가 갈릴 때, 소금에 절일 때, 고춧가루와 젓갈 범벅이 될 때, 장독에 담겨 땅에 묻힐 때(김치냉장고에 넣어질 때) 각각 죽는다는 배추 오사론(五死論), 여기에 김장 나눔 커뮤니티를 통한 이웃사랑에 한 번 더 죽는다고 추가해본 적이 있는데…


배추 오사·육사론을 무력화하고도 남을 배추발(發) 물가폭탄이 한국 정치의 최대 이슈가 됐다. 국정감사장의 배추 소품도 자연스럽다. 어딜 가나 김치인심은 짜졌고 식당과 복지시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학교급식 김치 입찰에서 유찰 사례가 잦고 공장은 돌릴수록 손해라 한다. 포기당 400원에 배추를 판다는 생산자나 1만 5000원대까지 치솟았던 배추를 사지도, 김치를 담그지도 못하는 소비자나 '배추 칠사론(七死 論)'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이 와중에 “빵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던 MA(마리 앙투아네트)와 “내 식탁에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를 올리라”는 MB(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패러디화해 도매금으로 씹히기도 했다. 청와대 양배추의 스토리텔링 실패는 사전 분석 미흡에다 눈물 흘리며 먹는 배추에 대한 공감대 부족에 기인한다. 배추는 '하필' 물가관리 지표인 52개 'MB물가' 품목의 하나였다. 호사가들의 말장난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좀 그런 이유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있다. 엊그제도 '제3 정당의 출현'을 쓰는 등 뉴욕타임스에 꼬박꼬박 칼럼을 싣는 프리드먼이 예시한 '렉서스'는 세계화, '올리브나무'는 과거 전통이다. 그는 이 둘의 균형으로 세계화 체제를 발전시키자 역설한다. 대비가 이보다 선명한 쪽은 『빅맥이냐 김치냐』(The Kimchi Matters)다. '김치를 알아야 한다'는 서론이 인상적인 이 공저에서 김치는 빅맥('시장경제') 뒤 특유의 '지역적 역동성'을 은유한다. 세계화, 그리고 안정과 번영을 원하면 '김치'를 잘 다스리라는 것. 한데 우리 고민은 김치가 동서 문화 융합의 이상이 아닌 현실의 일용할 양식이라는 데 있다.

오죽하면 '밥과 김치'라 했겠는가. 이는 찬이 없는 소박한 밥상을 이르지만 밥상에 꼭 오른다는 뜻도 된다. 옛 동국세시기 10월조에 장 담그기와 김장을 “1년의 중요한 계획”이라 했는데, 배추김치는 정말 덜 담그고 안 먹자는 말이 불통하는 일일(日日)의 중요한 계획이다. 피클과 올리브 장아찌나 먹는 유럽인, 포우차이(泡菜) 먹는 중국인과 오싱코(御新香)나 즈게모노(淸物)를 먹는 일본인이 온전히 이해 못할 '계획'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시추에이션'을 직접 보고 뿔난 민심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왜 배추가 '금추'·'다이아추'가 됐는지, 근본 원인을 모르고 근본 대책이 나올지, 수급 조절 능력이 있기나 한지, 뒤늦게 남발하는 대책들이 안정화 대책, 안전성 있는 대책일지에 대한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다. 이것이 '대란'이라면 지난해까지도 과잉 생산과 가격 폭락으로 트랙터로 배추밭 갈아엎기를 반복할 때부터 예고된 대란이다. 어쨌든 이제 “의식주 중 '식'과 '주'가 단군 이래 최대의 파동”(박병석 의원)을 겪으리라는 전망이 정면으로 틀리기를 기도라도 해야 할 판국이다.

아울러 배추 파동이 이상 기후보다 책상머리에서 짠 고식지계나 휴대폰 팔아 배추 사먹으면 된다는 신념 탓이 아닌가도 의심해봐야 한다. 퓨전 타악 '난타' 공연장에도 채소 절약 특명이 내려졌다는 소식이다. 인생배추로 인생김치 담글 이야기는 미루고 지금은 '김치(배추)를 바로잡을' 때다. 김치(배추)를 '잘 다스려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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