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제봉 국제로타리 3680지구 전 총재 |
내가 제일 먼저 개시하는 줄로만 알고 찾아갔는데 어느새 나보다 먼저 들어가려는 낯선 손님 두 사람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열 살이 채 안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기아빠의 손을 이끌고 여기 저기 눈치를 살펴가며 어색한 발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가 남루한 옷차림이다. 누가 보아도 한 눈에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옷 세탁은 물론 목욕은 언제했는지 퀴퀴한 냄새가 저 만큼 서 있는 나에게까지 코를 찌른다.
이 때다. 음식점 주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님을 향해 나무라듯이 큰 소리로 말한다. “얘야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이 다음에 오너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 못 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다.
그때서야 음식점 주인은 그들이 음식을 사먹으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은 “그런데 얘야 이리 좀 잠깐 와 볼래?” 계산대에 앉아있던 주인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러 세운다.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야”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들다시피 한 그 소녀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금방 시무룩해져 버린다. “아저씨 금방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원짜리 몇 장과 손바닥에 놓여있는 동전 한 웅큼을 꺼내 보였다. 얼른 보아도 국밥 두 그릇 값은 되어 보이는 듯 했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잠시 후 주인아저씨는 순대 국밥 두 그릇을 갖다 주었다. 식사를 하면서 두 사람이 너무도 다정히 대화를 나눈다. 한쪽에 비켜 서있던 나도, 계산대에 앉아있던 주인아저씨도, 그들의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딸이 조용한 말투로 입을 연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 줄게”라고 속삭이듯 아빠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가 국밥 속에 있는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앞 못 보는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 주고는 “아빠 이제 됐어요. 간이 잘 맞을 거예요. 그런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을 드세요 내가 김치 올려 줄게….” 그때다 수저를 들고 있던 아빠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히 고여 있었다. 얼른 보아도 딸의 효심을 알았다는 표현인 모양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 아저씨는 조금 전에 자기가 했던 일에 대한 뉘우침으로 그들의 얼굴을 후회와 죄스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듯 했다. 나는 아침밥 먹는 일도 잊어버린 채 그 순대국밥 두 그릇 값을 대신 치러주고는 그 식당 주인에게 누가 지불했는 지 말하지 말라고 하고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버렸다.
우리들 인간사회에서는 귀천이 없어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귀하고 천하게 만드는 것 같다. 어느 누구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말고, 인간의 마음 속 깊이에 서려있는 보이지 않는 인격을 존중하며 상대를 대해야 한다.
아무리 각박한 사회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일상 행동이 이 아이의 효행처럼 세상에 좋은 빛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중에 그 순대국밥집 주인에게 물어본 그 소녀의 나이는 불과 8살짜리 이었다.
어느새 몇 개월이 흘러 지나버린 일이지만 추석명절은 잘 보냈는지, 아직도 그 어린 소녀의 모습과 깊은 효심이 나의 마음 속을 마구 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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