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그러나 이러한 추정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내가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사례들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보는 까마귀는 전부 검지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까마귀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앞으로 태어날 까마귀들이 모두 검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칼 포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술의 과학성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진술이 과학적인지 아닌지 여부는 그 진술에 대한 반증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가령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진술은 검지 않은 까마귀라는 반증을 제시함으로써 부정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진술은 검지 않은 까마귀가 발견되기 전까지 잠정적으로 참(true)인 명제로 인정된다. 그는 반론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진술이 과학적 지위를 갖는다고 해서 소위 반증가능성(反證可能性, falsifiability)이라는 과학적 진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지난 9월 13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최종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합동조사단 구성 후 불과 40일 만에 성급하게 나온 중간보고서의 결론과 동일하다.
천안함 침몰과 같은 거대 사건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정치적 목적과 이념적 잣대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철저하게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과학적 논쟁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막연한 자료만을 나열해 놓고 북한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는가라는 주장은 비과학적이다.
무엇보다 먼저 사건 원인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자료와 과학적 근거를 밝혀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이 집적되어야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도 과학적 진실을 밝히는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그렇지 않을 가능성 즉 반증가능성을 놓고 열린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결정적 증거라고 제시하고 있는 어뢰추진체의 '1번' 글씨는 북측이 아닌 남측 사람에 의해 쓰였을 가능성도 열어 놓아야 한다. 폭발 시 수천도의 열이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글씨가 타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해 과학적 설명이 필요하다. 어뢰추진체의 부식 정도를 보면 최소한 몇 년은 된 것 같다는 반론에 대해 두 달 만에 그런 부식이 가능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대야 한다. 어뢰 흡착물의 성분이 폭발에 의해 형성된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부식이나 풍화작용을 통해 나올 수 있는 수산화알루미늄이라는 주장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 합동 군사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형 잠수정이 어떻게 NLL을 우회해 천안함을 공격하고 유유히 도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지 않고도 침몰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친북좌파 세력의 준동이 아니다. 과학적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제기되는 반증가능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천안함 사건 보고서의 신뢰성이 담보될 수 있으며, 과학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힐책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조사위원을 검찰이 기소하는 나라는 결코 열린 사회도 선진 국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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