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출신총리'라고 포장한 언론보도의 상징 효과는 큰 것이어서 만약 김황식 후보자가 청문에서 탈락할 경우 해당 지역 사람들 다수가 비리 낙인의 덤터기 번개를 맞을 수 있다.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가 청문을 통과한다면 호남에 근거지를 두었다는 민주당의 무딘 검증의 잣대가 '비리한' 것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크다.
새 총리 후보자에 대해 정치권이 서로 교감했다느니 혹은 긴 연휴 직후에 잡혀 있는 청문회 절차가 짧고 간단한 요식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그럴듯한 풍문이 빠르게 회자되었다. 야당은 동향이라고 봐주는 일은 없을 거라며 급히 여론 불끄기에 나섰다. 계면쩍어서인지 언론도 후보자의 병역면제 의혹 등을 불쏘시개 삼아 서서히 군불을 지피고 있다. 밝히고 가리고 따져서 묻는 것이 처음부터 그들 본연의 엄정한 임무이거늘 여전히 변죽만 울리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생게망게하다.
그 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한번 있었다고 하지만 김 후보자는 아주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3권 분립의 한 축인 대법관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2008년 9월 대통령 직속기구의 감사원장에 임명된 그는 그마저 절반 임기에 겨우 턱걸이 했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대법관과 감사원장의 임기를 각각 6년과 4년씩 규정하고 있다.
대법관은 연임이 가능하고 감사원장 역시 한차례 중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헌법학 교과서에 따르면 헌법이 이들 직책의 임기를 분명하게 못받은 까닭은 그가 해당 직무를 선량하게 이행하는 동안 면직이나 이임을 강요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관의 독립성과 업무수행의 절차적 정당성을 위해 유익하다고 해석되는 헌법상 임기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외부로부터 부당하게 가해지는 압력에 대한 저항 수단으로 그동안 간주돼 왔다.
전임 정권에 의해 임명된 전윤철 감사원장이 임기를 3년 반씩이나 남기고 물러났을 때 언론은 그를 사퇴하게 만든 권력의 은밀하며 동시에 거친 압력을 '외부적 힘의 행사'로 규정했었다. 그와 달리 김황식 총리 후보자가 헌법상 임기를 채우지 않고 대법관과 감사원장직을 중간에 퇴임하는 것은 부당한 외부 압력과 상관이 없다. 헌법상 성격이 다른 권력으로 말을 갈아타보거나 더 높은 권력의자에 옮겨앉는 '스스로의 절차'로 보이긴 하지만 법률이나 헌법상의 '규정' 위반과 거리가 멀다.
고지식한 우리 헌법은 외부압력에 의한 독립성 훼손을 우려했을 뿐 '자기로부터' 파괴될 수도 있는 헌법 임기제와 그로 인한 독립성의 붕괴 가능성을 헤아리지 못했다. 김 후보자의 내정을 두고 '출신총리'의 가치를 과대 포장하거나 감사원장을 사퇴한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갖는 수준의 문제로 정치권과 언론이 접근하는 것은 임기제를 규정한 '헌법정신'을 아예 묵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엘리트 법관 출신인 김 후보자에게 자기로부터 독립성을 보지 못한 '헌법규정'을 단순히 적용할지, 아니면, 듣그럽겠지만 임기제를 새겨둔 '헌법정신'을 헤아려보라고 강력히 주문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헌법기관의 독립성 훼손 뿐만 아니라 바야흐로 '자기로부터' 발현되는 독립성 침해를 헌법이 걱정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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