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가위 어떤 영화로 즐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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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한가위 어떤 영화로 즐길까

  • 승인 2010-09-19 13:28
  • 신문게재 2010-09-20 14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추석과 같은 명절은 영화가에서 독특한 시즌이다. 좋은 영화를 내놓고 관객을 부르는 게 아니라 관객이 영화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너도나도 영화를 내놓기 바쁘다. 좋은 영화를 고르는 건 관객의 몫. 추석 극장가는 온통 한국영화 판이다. 추석 연휴, 극장만 찾아도 될 만한 화려한 구성이다. 누구는 풍성하다고 즐거워하고, 누구는 혈투라고 싸움을 붙인다. 승자는 누가 될까.
 
▲해결사
감독: 권혁재. 출연: 설경구, 이정진, 오달수, 송새벽
 
부처님 오신 날 휴일. 대전시청 앞 도로는 '불통(不通)이었다. 차들이 질주하고 부딪고 부서지는 영화를 찍느라 북적거렸다. 영화사에 따르면 이를 위해 6개월을 준비했고 스태프 100여명, 보조출연자 300여 명이 동원됐다.

'해결사' 대미를 장식하는 이 시퀀스는 꽤 볼만하게 나왔다. 자동차가 허공을 날아가고 폭발하는 화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연쇄살인마와 주인공 태식이 대결하는 장면에선 문득 “저곳이 유성 선병원이지”하는 생각에 반가웠다. '해결사'는 숨은 그림 찾듯 화면 곳곳에서 대전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빠르게 내달린다. 불륜 현장을 잡아달라는 의뢰가 살인사건이 되고, 살인사건이 정치적 음모로 발전하는 서사가 그렇고, 소소한 에피소드도 질질 끄는 법이 없다.

액션도 화끈하다. 몸과 몸이 부딪는 말 그대로 육탄전이다. 병원 로비, 좁은 욕실 등 장소 불문(不問), 의자 다리나 플라스틱 옷걸이 등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무기로 써먹는다. 일종의 생활밀착형 액션이라고나 할까. 악전고투하는 설경구의 연기도 좋지만, 설경구는 선, 이정진은 악이라는 단선적인 얼개에 활기를 불어넣는 건 강력반 콤비 오달수와 송새벽, 납치 타깃 이성민이다. 이들의 연기와 변칙적인 캐릭터는 짜고 맵기 만한 영화에 웃음을 곁들이며 아주 맛깔스런 양념을 친다.

1980년 생 젊은 권혁재 감독의 관심사는 오로지 오락 활극의 쾌감인 듯하다. 액션도 코미디도 주류가 아닌 '짬뽕' 영화. 류승완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 영웅의 등장, 액션 활극에, 웃음에, 정치를 꼭꼭 씹는 맛까지. '해결사'는 좋은 액션영화라기보다는 딱 맞춤한 추석용 영화다.

 
▲무적자
감독: 송해성. 출연: 주진모 김강우 송승헌 조한선
 
 ‘영웅본색’의 리메이크. 원작을 적절히 변주하거나 그대로 따르면서 한국적 정서를 듬뿍 입혔다. 가족을 남겨놓고 북을 탈출한 형, 뒤따라 탈북했지만 그런 형을 증오하는 동생의 갈등을 기둥으로 형제애와 우정을 절절하게 그린다.

 원작과 매치시켜보면 주진모가 적룡, 김강우가 장국영, 송승헌이 주윤발, 조한선이 이자웅이다. 송승헌의 주윤발은 어떨까.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쌍권총을 쏘던 주윤발.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쌍권총을 쏘아대는 송승헌의 모습은 주윤발이라기보다 람보에 가깝다.

영화의 핵심이랄 수 있는 ‘총싸움 장면’도 2010년 ‘무적자’보다 1986년 ‘영웅본색’이 더 화려하고 강렬하다. 원작을 못본 관객이라면 폼 나는 수컷들의 우정이 가슴을 두드릴 듯하다. 25년 전 젊은 세대들이 그랬듯이.
 

▲시라노; 연애조작단
감독: 김현석. 출연: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감정이 움직여야 하는 사랑도 치밀한 계산과 과학적인 접근이 있다면 충분히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송새벽과 같은 얼굴, 연애 센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숙맥도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게 만드는 전문가들이다. 물론 고액의 수임료를 받고 하는 사업이다.

 성공률 99%를 자랑하는 이 에이전시가 위기를 맞았으니, 의뢰를 받은 타깃녀가 하필 에이전시 대표의 옛 사랑이다. 현대식 사랑을 분석해 드러내놓고 비트는 재기가 톡톡 튄다.

남녀의 미묘한 감정선을 끝까지 이어가면서 웃음과 눈물을 끌어내는 연출은 발군. 물론 사랑이 영화처럼 뜻대로 될 린 없다.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박신애의 지금까지 알려진 이미지와 정반대 지점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좋다. 추석 영화 중 군계일학.
 

▲그랑프리
감독: 양윤호. 출연: 김태희 양동근 박근형 고두심
 
 김태희의 첫 원톱주연 작. 당차고 털털하고 솔직한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양동근의 직선적이고 엉뚱한 듯 그만의 페이소스가 뒷받침하고,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광도 시원하다.

 경마 레이스 도중 사고를 당해 좌절한 기사가 다시 일어서 그랑프리에 도전하는 과정이 줄거리. 여기에 목장주와 조련사, 두 노인의 오랜 사랑이 겹쳐진다. 문제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점.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은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설상가상 김태희와 양동근의 멜로든, 박근형과 고두심의 로맨스든 신선도가 떨어진다. 에피소드가 너무 전형적이고 식상하다. 시대착오적인 느낌도 든다. 너무나도 뻔한, 판에 박힌 듯한 장면이 많은데다 인물 간 관계 설정도 억지로 끼워 맞춘 듯 버석거린다. 김태희의 매력에 빠지고 싶은 분이라면 강추.
 

▲퀴즈왕
감독: 장진. 출연: 김수로, 한재석, 이지용, 류덕환
 
 강변북로 한복판에서 4중 연쇄추돌사고가 발생한다. 한 여자가 차에 뛰어들었기 때문. 차에 타고 있던 10여 명이 모두 경찰서에 모이고,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곧 열릴 퀴즈쇼의 정답을 알게 되는데. 1년이 넘도록 퀴즈왕이 탄생하지 않은 퀴즈쇼의 누적상금은 133억 원. 100억 대박을 향한 인간 군상들의 소동극이 시작된다.

 장진스럽다. 폐쇄적인 공간에 놓인 다양한 캐릭터들이 부대낀다는 점에서 연극적이고, 웃음의 색깔 또한 명확하다. 장르의 법칙을 비틀어 웃음을 건지고, 캐릭터들이 서로 치고 빠지는 리듬에서 웃음을 일군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날고 기었던 캐릭터의 생기(生氣)는 퀴즈쇼에 와서 잦아든다. 정답을 본 이상, 이들 중 누군가가 우승한다면 경찰은 수갑을 채울 태세다. 과연 퀴즈왕은 누가 될까.
 

▲레지던트 이블 4: 끝나지 않은 전쟁 3D
감독: 폴 앤더슨. 출연: 밀라 요보비치, 앤트워스 밀러
 
 ‘레지던트 이블 3: 인류의 멸망’은 오리지널 팬들을 의아스럽게 했던 실패작이었다. 원작이 게임인 만큼 게임의 향취가 나야 제 맛이다. 사막을 무대로 거대 서사극처럼 꾸민 3편은 그걸 잊었다. 4편 ‘끝나지 않은 전쟁 3D’은 3편의 악몽을 씻어내기 위해 대담한 선택을 한다. 1편을 연출한 폴 앤더슨을 다시 감독 자리에 앉힌 이유이기도 하다. 오리지널로 돌아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3편의 마지막 장면, T-바이러스의 변이로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이 된 앨리스는 자신의 클론들을 이끌고 엄브렐러 본사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한다. 4편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앨리스는 클론들을 잔뜩 이끌고 도쿄 깊숙한 지하에 위치한 엄브렐러 본사에 침입한다.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이 싸움에서 폴 앤더슨 감독은 본사의 반격에 앨리스가 당하도록 만들고 초인의 힘을 빼앗는다. 과거 시리즈와 연결하면서 그간 엇나간 가지들을 정리하고 원점으로 되돌리는 각본이 꽤나 영리하다.

 오리지널 게임이 향취가 물씬하다. 게임처럼 미션이 주어지고, 마치 몇 가지 재미있는 액션 스테이지를 즐기듯 강도를 높여가며 내달린다. 좀비들도 1편에 비해 훨씬 강하고 빨라졌다.

 3D 효과도 괜찮다. 처음부터 3D로 찍은 화면은 영화 초반과 후반, 액션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앨리스와 클론들이 엄브렐러의 지하 본사에서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거나,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꼼꼼하게 3D로 설계돼 액션의 쾌감이 대단하다. 앨리스와 짝을 이루는 앤트워스 밀러는 ‘프리즌 브레이크’ 팬들에겐 반가운 추석선물이 될 듯. 미심쩍은 군인으로 출연하는 그의 첫 등장 장면은 딱 ‘석호필’이다.
 

▲슈퍼 배드
감독: 피에르 코핀, 크리스 르나우드. 목소리 출연: 태현, 서현
 
 ‘슈퍼 배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제임스 본드다. 특히 대머리에 음침한 인상의 주인공 그루는 ‘007 여왕폐하 대작전’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 등에 등장하는 본드의 상대 블로펠트를 똑 닮았다.

 그루와 벡터, 두 악당이 서로 경쟁하며 벌이는 소동극. 오징어와 피라냐가 발사되는 총 등 신무기와 사람들을 꽁꽁 얼린 뒤 새치기를 하는 범죄 행각 등 엉뚱하고 기발하다.

더 좋은 무기를 차지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장면에선 3D의 진가가 발휘된다. 눈앞으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 같은 그루와 벡터의 공중 추격신, 실제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아찔한 롤러코스터 질주장면은 인상적이다. 나쁜 남자가 대세인 요즘 영웅보다 악당이 매혹적인 모양. 미국에선 ‘드래곤 길들이기’를 넘어서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마루 밑 아리에티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목소리 출연: 류노스케 카미키.
 
 아리에티는 인간 몰래 인간의 물건을 조금씩 빌려 마룻장 밑에서 살아가는 작은이 가족의 딸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아리에티와 한 인간 소년의 결정적 만남을 그린다.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온 병약한 소년 앞에서, 멸망해가는 종족의 소녀는 안간힘을 다해 외친다. “우린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아!”

 자연의 아름다움에 공감하고 서로 돕고 살라는 딱 지브리표 영화. ‘빌린다’는 건 뭘까. 작은이들은 인간의 물건을 가져가며 ‘빌린다’고 하고, 인간들은 ‘작은 도둑들’이라고 부른다. 이 갈등은 상대방에게 정말 필요한 걸, 혹은 내게 정말 소중했던 것을 기꺼이 주는 ‘선물’의 형태로 정리된다. 그 선물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 남아라”, 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남는다. ‘나눔+’의 추석에 어울리는 메시지다.
 

▲아저씨
감독: 이정범. 출연: 원빈, 김새론, 김희원, 김태훈.
 
 원빈에 의한 원빈을 위한 영화. 몸이면 몸, 칼이면 칼, 총이면 총, 다양한 액션을 몸에 맞춘 듯 구사하는 스크린 속 원빈은 한국영화에서 지금껏 쉽게 보지 못했던 고독한 영웅의 아우라를 한껏 내뿜는다.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그물망처럼 얽힌 마약밀매의 세계, 신체장기 매매의 풍경은 감독이 발로 뛴 취재물로 생생하다. 거의 르포에 가까운 대사와 풍경은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주인공의 분노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 진흙탕 속을, 소녀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반자동 권총을 빼들고 뛰어든 영웅의 이야기.

간혹 오글거리는 대사가 헛웃음을 나오게 만들지만 한눈팔지 않고 액션의 쾌감에 몰입한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충분히 점수를 줄 만하다. 올해 나온 한국영화들 틈에서 손꼽혀 마땅할 엔터테인먼트다. 스타일리시한 액션 영웅의 탄생.
 

▲땅의 여자
감독: 권우정. 출연: 강선희, 변은주, 소희주.
 
 귀농여성의 다큐멘터리. 그렇다고 귀농생활의 여유로움에 대한 찬가가 아니다. 도시에서 자라 농촌으로 시집 온 세 명의 여성이 농촌에서 겪는 삶을 관찰한다. 아내, 엄마, 며느리 그리고 농사꾼으로 겪는 갈등과 행복을 다각도로 담으면서 농촌에서 여성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게 가능한지를 묻는다.

 세 주인공은 놀라운 에너지의 소유자들이다. 씩씩하지 않았다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큼직한 상을 연달아 수상할 수 있었을까. 강선희, 변은주, 소희주. 이 세 귀농여성은 영화제에서 마련한 관객과의 대화 때마다 관객에게 폭소를 안겼다.

이들의 씩씩하고 건강한 에너지는 화면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땅의 여자’는 그들의 넘치는 생명력을 드러내는 영화다. 상당히 유쾌하고 아름답다.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상영 중./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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