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진 한남대 교수 |
아리에티는 인간들 모르게 인간의 물건을 조금씩 빌려 마루 밑에서 살아가는 소인 가족의 딸이다. 소녀는 14살, 그녀의 키는 10cm, 건강하고 아름답다. 그녀의 가족은 마루 밑에 숨은채 인간의 살림 소품을 조금씩 빌려 살아간다. 그녀의 가족은 심장 수술을 앞두고 외갓집에 요양 온 소년 쇼우에게 발견되면서 큰 위기를 맞는다. 병약하지만 침착하고 사려 깊은 소년 쇼우가 베푸는 호의에 아리에티의 감정은 두려움과 설렘으로 뒤엉킨다.
빌림과 나눔의 미학, 더 이상 작은 빌림과 나눔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상은 아리에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너희는 곧 사라질 거야”라고 외치는 쇼우, 이에 대해 건강하고 씩씩한 소녀답게 “우린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아” 라고 응수하는 아리에티. 그들의 만남은 마치 반짝 하고 일순간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사라지는 하나비(花火), 벚꽃처럼 벼락같이 피었다가 질 것 같은 순간의 팽팽한 황홀함과 위험이 공존한다. 만남의 순간은 황홀한 아름다움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사라짐을 배면에 깔고 있다. 불꽃놀이와 벚꽃으로 상징되는 그네들의 존재 미학을 보는 듯하다.
또한 자연의 아름다운 공간에서 조우하는 병약한 소년과 건강한 소녀의 이야기는 '비밀의 화원'을 떠올리게 하고, 더불어 자연의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공간을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점에서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보편적인 미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건강한 소녀성이 구원하는 세상을 그렸다는 점은 지브리 스튜디오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주제 의식을 연상하게 하고, 다락방에서 몰래 숨어 지내며 발각될까 매일매일 가슴을 졸이는 장면은 안타까운 안네 프랑크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며, 까마귀가 창가의 아리에티에게 위협적으로 날아드는 장면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를 떠올릴 만큼 공포적이다. 이 외에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아리에티의 아빠와 엄마, 스피라의 얼굴을 잘 살펴보라. 어디서 많이 볼 인물의 외형이 아닌가. 그러나 그 패러디의 익숙함을 탓할 이유는 없다.
NHK에서 '겨울연가'를 방영하면서 뜻밖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에게 한류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그런데 한류의 지속성, 포스트 한류의 시대에 대한 사회 문화적 고민이나 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문화론자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 같다. 스타 중심의 전략이나 상투적인 이야기로는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고, 중요한 것은 작품이며 한국이라는 국가 지역적 특수성을 통해 새로움이나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세계인을 감동시킬 보편적 미학과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류에 도취해 있기보다는 우리도 재패니메이션의 미학적 전략을 한번쯤 곰곰이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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