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진 충청체신청장 |
미국 남앨라배마대 피쿠교수는 엑슨발데즈 사건을 수년간에 걸쳐 조사하여 비난이 분노를 낳고, 분노가 불신을 초래하고, 이것이 지역 주민간의 갈등과 위기를 초래하여 '무너지는 공동체'가 초래된다고 밝혔다. 농어업 등 자연환경에 의존하던 친밀한 지역사회가 인공재난에 따른 책임소재, 피해보상과 복구문제로 주민간 의견분열이 일어나고, 분노ㆍ우울증ㆍ절망감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린다고 한다.
금년 4월 BP사의 미국 멕시코만 심해 기름유출 오염피해를 입은 지역사회에서도 유사한 심리현상이 발견된다. 다만, 멕시코만 기름오염사고의 경우 좀 더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고, 원인 제공자인 BP사가 5000만달러의 대규모 기금을 피해지역에 제공한다는 차이가 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직후 우리는 오염된 바다와 해변의 응급복구를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방제활동에 참여하는 '태안의 기적'에 흥분과 대견함을 느꼈지만, 철저한 사고 책임 규명 및 피해배상과 심리적 피해에 대한 장기적 심층적인 대응은 소홀히 했다. 미국의 두 차례 기름유출 사고와 마찬가지로, 태안주민은 기름유출 사고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70%, 우울 37%, 불안 27%, 적대감 17%를 나타내는 등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다( 김교헌, 2008). 또한, 2008년 2월 제공된 생계비의 균등 또는 차등분배 방법이나 방제인건비 지급을 둘러싼 마을 주민간의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태안군 유류피해협의회가 구성ㆍ운영중이고,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 지원 특별법'이 2008년 발효되었지만, 필자가 만난 태안 우체국 직원, 어민과 관광업 종사자들은 현지 민심이 심각하고 피해보상의 방식, 속도, 규모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홍덕화ㆍ구도완 논문(2009)은 근본적인 문제로 가해자-관리자-피해자의 근본 역학관계가 변화되어 갈등해결이 국가 제도화되면서 문제 해결이 지역 공동체 내부로 전이됨으로써, 가해자와 관리자는 제도의 장막 안으로 숨고 피해자는 환경재난과 사회 심리적 재난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별법이 가해자에 대한 구상권을 명시하지 않은 채 피해배상을 국제유류오염손해보상(IOPC)이 정한 피해추정액 6013억원 중 선주 1425억원을 포함한 IOPC 기금 3216억원, 삼성중공업 배상한도 56억원을 포함한 국가 2798억원으로 정해 놓았다고 한다. 특히, 소득을 증빙할 수 없는 굴양식 관련 맨손어민의 피해보상과 무자료 거래는 인정되지 않고, 태안 지역의 고기잡이에 관한 유용한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단편적ㆍ추상적인 앞가림이 아니라, 인공재난 피해지역 주민의 감정적인 손상과 공동체 해체위기에 대해 심층적이고 구체적인 복합처방이 필요하다. 태안지역 주민들이 무력감이나 분노를 떨치고 주도적으로 '마음의 기름바다'를 정화하고,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세계에 아름다운 태안을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낙동강 페놀오염 사례 등을 참고하여 필요하고도 충분한 보상이 신속히 이루어지고 공동체의 신뢰와 리더십 회복을 도우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인공적인 환경재난에 대해 초기 단계부터 정확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내년에는 태안주민들이 인공환경재난의 심리적 아픔에서 벗어나 훈훈한 마음으로 자연재해가 없는 추석을 맞이하기를 빌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