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도시를 자신의 방을 독특한 공간으로 연출하듯 '아름답게' 가꾸는 작업은 거주민들에게 기쁨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가적으로 관광자원을 창출해 다시 거주민들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는 보람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아름다움과 개성, 독특함이 묻어 있는 도시, 그러한 도시공간을 연출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 가운데 도시조경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대상이다.
요즘 국내 여러 도시를 다녀보면 1970년대, 80년대와 많이 달라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상공에서 내려다본 한국은 초록이 부족한 산야 사이로 쭉쭉 뻗은 아스팔트길이 강조되는 살풍경한 모습이 무척 아쉬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도시, 어느 마을에서도 풍성한 초록을 볼 수 있다.
여름 홍수와 겨울 가뭄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후가 최적의 조건이 아님에도 우리 주변에서 풍족한 초록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방한과 취사 연료가 목재에서 화석연료로 바뀐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나무를 가꾸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시내에서 과실수를 보는 것도 이젠 전혀 낯선 일은 아니다. 근대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주거단지와 산업단지를 위해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져야만 했던 숲과 공원들이 도시조경의 미를 위해 다시 재등장하고 있다. 조경이 토목이나 건설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생활문화의 주된 대상으로 조명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파트 광고에 주로 등장하듯 현대인들이 꿈꾸는 여유로운 삶의 이미지는 청정한 자연이 풍족한 삶의 공간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다. 싱그러운 나무가 있는 공간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이미지. 그런 한가로운 이미지의 중심에는 언제나 꽃과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방문하면 꽃과 나무로 단장한 광장들이 시민들의 삶의 중심 공간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도심 속의 공원과 숲길은 단순한 건축 공간을 넘어서, 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문화가 교차하고 혼합되는 풍성한 창의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서울을 비롯해 주요 대도시에는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를 위한 공원들이 다양하게 조성되고 있다.
학교 운동장을 연상시켰던 단순하게 넓기만 했던 공간이 점차 입체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경향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우리의 공원과 광장 조경은 여전히 어딘지 획일적인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공간을 지나치게 기능적 동선으로 구성하고, 배치한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나와 백화점으로 연결되고, 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과 마주하는 동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공원과 광장은 시민들이 소요하고 휴식하며, 소통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의 문화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능적 동선이 아니라, 걷고 쉬는 공간의 입체화가 가능한 비기능적인 동선이 도심 공간 조경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까.
도심의 획일적이고 인공적인 공간에서 작은 상념과 공상의 자유로움을 선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의 연출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충분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공간을 위한 조경은 광장과 공원의 쉬어가는 존재적 의미와 대조적이다.
도시 조경의 아름다움은 분명히 가꿈을 통해 피어난다. 이때의 가꿈은 공간의 기능적 활용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창의적 입체화에 달려있다. 몸통은 있고, 가지와 잎사귀가 없는 도심의 가로수들은 끔찍함이다. 억지스러운 조경은 진한 화장과 극심한 성형에서 오는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다.
도로의 크기와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조경은 지극히 형식적이다. 오솔길과 둘레길, 작은 물길과 연못, 구름다리는 넓은 공간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연과 사람이 도심에서 공존할 수 있는 조경이 필요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억지스럽게 일궈진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푸근함을 주는 공간을 통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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