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충민 생명연 책임연구원 |
마틴 루터 킹과 같이 아주 길게 자기의 꿈을 말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5년, 10년, 50년 뒤의 자기의 모습과 위치를 한번쯤 상상해 봤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러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부모에게 의존적이라 '꿈'이라는 너무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아직 부모로부터 지시를 받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나의 꿈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1970~80년대에는 경제적으로는 녹록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누가 나의 꿈에 대해서 물으면 당당히 '저는 과학자가 될 거예요!'라고 말했었다.
정확하게 그 의미도 잘 모르면서 그저 자연현상을 밝히는 과학자가 너무 끌렸다.
나는 지금, 그렇게 무작정 말했던 그 과학자가 되어 있다. 그러면서 '과연 내 꿈을 현실화 시킨 사람들은 누굴까?'를 생각해 보게 됐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은 나의 아버지다.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아버지께서 매달 정기구독해서, 보게 된 주홍빛이 선명한 '월간과학'이라는 잡지의 표지들이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시골에 사는 꼬마에게 그 잡지는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 당시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큰 결심을 하셨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내가 대학원을 가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 '허블망원경이 새로운 은하 발견', '슈퍼박테리아 출현', '인공생명체 합성' 등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적힌 신문기사를 팩스로 보내주신 것이 지금은 여러권의 파일이 됐다.
이제 나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우리 아이들의 꿈은 축구선수 또는 대통령과 패션디자이너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도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해 줄 수 있는 것이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아이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패션디자이너는? 고민 끝에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의 또 다른 꿈인 축수선수를 위해서 축구를 같이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한지 석달이 돼 간다. 30분이긴 하지만 큰 운동장에 두명의 아이와 어른 한명이 공을 쫓아 다니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약간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내 아이의 꿈을 위한 작은 투자라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늘 내 아버지가 나에게 과학자의 꿈을 위해 하신 일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것인가를 느끼고 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누군가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꿈을 당당히 말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우리들은 나이가 들면서 가끔 뒤를 돌아보게 될 때, 젊었을 때 가졌던 꿈에 부끄러운 자신을 종종 발견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반복된 생활 중에서라도 잠시 자기의 꿈을 다시 꺼내보고, 없거나 성취되었다면 새로운 꿈을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 늘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과학자처럼 우리의 아들, 딸들이 꿈꾸기를 즐기고 그 꿈을 실현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내일 또 한 학생이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나의 첫 번째 질문은 늘 그렇듯이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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