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찬 대전대 교수 |
당사자가 물러나고 난 뒤에도 특혜 채용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때마침 직전에 발표된 고시제 폐지 논란에 불을 붙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공정한 사회를 화두로 밀어올리며 한창 외연을 키워나가고 있다.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자리에 그것을 능가하는 초대형 메가톤급 태풍이 불어 닥친 것이다. 인터넷과 트위터에서는 이미 “똥돼지를 고발합니다”라는 신드롬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와중에 “너 괜찮니”, “나 괜찮아”를 조심조심 연호하며 놀란 눈으로 추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파문으로 정부 부처에서 시행한 5급 특별 채용의 규모가 알려졌다. 그 규모에 대해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5급 신규 공무원 중 특채로 임용된 비율이 37.4%나 된다고 한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아직도 너무 많다는 사실을 탄식과 함께 또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잡은 인터뷰 장면에서 어느 청춘은 이러한 말을 하기도 했다. “고시 말고도 다른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길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절망했습니다.”
고시를 포함해 공무원 채용시험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게 되었다. 수백 대 일의 경쟁은 흔히 있는 일이고 서울시 공무원 채용시험 응시자들을 위한다고 KTX가 경부선 특별열차를 운행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가 응시하는 것은 지난 시절의 화제일 뿐 상한연령이 폐지된 지금에는 50대 합격자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대학생 17%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여학생 4명에 1명꼴로 공무원을 희망한다고 한다. 그것이 서너 해 전의 통계이니 이쯤 되면 왕조시대의 과거 열풍은 이미 넘어섰다고 해도 되겠다.
조선 후기 19세기에 서울의 풍물을 노래한 '한양가'에는 과거의 현장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밤중에 문을 여니 각색 등이 들어온다. 줄불이 펼치는 듯 새벽별이 흐르는 듯, 기세는 백전일세 빠르기는 살 같도다. 현제판 밑 설포장에 말뚝 박고 우산치고, 휘장 치고 등을 꽂고 수종군이 늘어서서, 접마다 지키면서 엄포가 사나울새, 그 외의 약한 선비 장원봉 기슭이며, 궁장 밑 생강 밭에 잠복치고 앉았으니, 등불이 조요하니 사월 파일 모양이다.” 그런데 내용이 좀 수상하다. 왜 과장의 문을 밤중에 여는 것인가? 응시자들의 한밤 질주는 또 무엇인가? 수종군은 누구며 왜 그들이 난리인가? 선비는 왜 생강 밭에 쪼그려 앉았는가?
수만 명의 응시자들을 과장이 다 수용할 수 없었기에 응시자들은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렇다보니 조금씩 앞당겨 문을 열게 되었고 또 도포자락 움켜쥐고 달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뿐이랴, 앞자리에 앉아야 그나마 답지를 제출할 수 있는데 거기는 수종군을 거느린 힘 있는 자들의 차지이니 힘없는 궁유들은 담장 밑 생강 밭으로 떠밀려 겨우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궁유들이 과거를 본들 입격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조선 천지를 이 지경으로 만든 과거제에 대해 다산은 식년시 하나만을 남기고 모든 부정기 시험을 혁파하고 그로 인한 인재의 부족을 '천용제'로 해결할 것을 주장했다. 천용제는 수령이 지역민들의 의견을 물어 지역의 인재를 추천해 관리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특별 채용이기는 하되 음서와는 다르고 요즘의 지역인재할당제와 가까워지는 개념이다. 특채를 전체 채용 인원의 반 정도로 유지한다는 것이 행정안전부의 주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진 자들의 대물림용으로 전락할 바에는 차제에 지역의 젊은이들에게도 희망과 기회를 주는 것이 차라리 옳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다산의 문제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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