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대전의 모습은 이렇게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인들을 위해 계획되고 발달하게 되는데 1920년대까지는 당시 대전의 중심지였던 대전역 주변의 중동, 정동, 원동, 삼성동, 인동 등지에 일본인 상가가 들어서며 일본식 시가를 이루었고, 효동, 천동, 삼성동 등지에는 정미, 제사, 피혁과 관련된 공장들이 들어서게 된다.
1930년대에는 1932년 도청 이전에 맞춰 선화동, 대전여중 주변, 용두시장 주변, 보문 중·고등학교 주변 등지에 일본인 저택이 들어서고, 경찰서와 법원 등의 행정기관 또한 도청 주변으로 이전해 오면서 관사, 상가, 학교 등이 지어졌다. 이와 더불어 대전역과 도청 사이의 도로가 넓어지고 관공서, 금융기관, 상가 등이 밀집되어 지어지게 되는데 그 흔적들을 지금도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그 중 일본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독점하기 위해 설립했던 '옛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건물이 원동네거리에서 인동네거리 방향 약 100m 위치에 잘 남아 있다. 광복 후 체신청과 대전 전신전화국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타일 판매점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1922년 12월에 완공되었으며 2004년 9월 4일 등록문화재 제98호로 등록되었다.
건축적으로는 1층 외부와 내부가 많이 변형되긴 하였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저층부의 석조기단, 붉은 벽돌 조적조 외벽, 지붕의 코니스 처리 등 근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주출입구를 강조하는 외관형식이나 정면 중앙 지붕 상부의 문양, 처마선 아래의 수평 돌림띠, 창틀 상인방의 정교한 부조 등은 당시 타 지점과 많은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나 건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물을 지금처럼 훼손된 채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역사의식의 부재를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목포의 경우 동양척식회사 건물을 개보수하여 2006년 일제강점기 목포 도시사회사를 살펴볼 수 있는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고, 부산도 이미 2003년에 '부산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여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옛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건물은 충남도청 건물과 함께 일제강점기 대전 원도심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몇 개 남지 않은 건물이다. 얼마 전 목척교가 새롭게 완공되었다. 광복 65주년을 맞이하는 이 때 목척교의 부활과 함께 대전에서 원도심이 지니고 있는 위치와 의미를 생각할 때 동양척식회사 건물이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대전 시민들에게 되돌아와야 할지를 생각해볼 시간이다. /이희준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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