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승철 을지대병원 류머티스 내과 교수 |
스스로 굴을 파기도 하지만, 굴 파기를 싫어해서 오소리의 굴을 빼앗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구미호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천적인 늑대와 사냥개다.
여우와 늑대는 천적이므로 정반대의 이미지가 있다. 여우는 대개 남성을 홀리는 여성으로 묘사되며, 구미호가 인간으로 둔갑할 때도 여성인 경우가 많다. 반면 늑대는 여성에게 접근하는 엉큼한 남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한 여우는 인간의 간을 먹는다고 설화에 주로 등장하는데 반해 늑대는 여성의 콩팥, 즉 신장을 공격한다는 얘기가 세상에 도는데, 그것이 바로 '루푸스'란 병 이야기다.
루푸스란 라틴어로 늑대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루푸스 환자들의 특이한 증상으로 코를 중심으로 양쪽 뺨에 붉은 발진이 생기는데, 늑대 뺨의 털 색깔이 다른 부분과 다르며 늑대가 주로 뺨을 할퀴어 생긴 상처 모양과 비슷하여 늑대(루푸스)란 병명이 지어졌다.
루푸스 환자 중 절반에서 신장에 염증을 일으키고 방치하면 그 중 80%의 환자가 결국 신장 기능을 잃어버려 혈액투석이나 신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태로 발전한다.
그러나 루푸스 환자에서 신장손상을 예방하는 치료제가 있는데 바로 '싸이톡산'이라는 약이다. 이 약으로 치료하면 신장에 염증이 생긴 환자 중 90% 이상에서 신장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 싸이톡산은 좋은 효능으로 인하여 30년 넘게 루푸스로 인한 신장염의 대표적인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으나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난소의 기능을 저하시켜 불임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루푸스 환자들이 가임기의 여성이기 때문에 임신에 대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다행히 루푸스로 인한 신장염의 치료를 받으면서 불임을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해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셀셉트'란 약이다. 약효면에서 싸이톡산에 뒤떨어지지 않으며 난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불임을 일으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도입되어 현재 시판 중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셀셉트란 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실제로 복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있다. 왜냐하면 셀셉트는 한달에 치료 비용이 20만~30만원 정도인 고가약인데 루푸스로 인한 신장손상시 바로 보험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보험기준에 따르면 루푸스로 인한 신장손상시 싸이톡산으로 우선 치료받고 호전되지 않는 경우에만 셀셉트를 보험으로 처방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환자들은 불임이 걱정되어 셀셉트를 복용하고 싶어도 불임을 일으키는 싸이톡산을 복용한 후에야 셀셉트를 복용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놓여 있다. 만일 보험이 적용된다면 루푸스란 질환은 희귀난치병으로 지정돼있기 때문에 한달에 2만~3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인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다. 인구 증가 정책의 일환으로라도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루푸스 환자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멀지않은 미래에 환자들이 불임 걱정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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